[뉴스] [청년극우 연속기획 ①] '밈'처럼 소비되는 혐오, 내 안의 극우를 깨우다
청년극우 연속기획 ① 극우란 무엇인가, 일상 속 극단적 정서
# 최근 청년들의 일상 언어와 정서에서는 ‘농담’과 ‘밈’의 형태로 혐오와 조롱이 오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타인을 향한 배제와 적대의 감정이 자연스러운 표현이 됐다. 이번 연재 기획은 우리 안에 내재된 혐오의 감정이 어떤 구조와 환경 속에서 형성되고, 이것이 어떻게 개인의 언어·정서·행동에 스며드는지 알아본다. 나아가 청년 극우화 현상과의 관련성을 짚어본다. 1회차에서는 청년 일상 속 ‘극단화’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며, 무심코 내뱉는 말과 가벼운 농담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의 흐름을 알아봤다.
“‘틀딱’ ‘분탕’도 일베 용어였어요? 전혀 몰랐네요…” A 씨는 자신이 쓰던 표현의 출처를 뒤늦게 알고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친구들끼리 가볍게 쓰던 단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롯된 혐오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사례는 낯설지 않다.
지난 3월 연세대 복지국가 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 조사 결과(만 18세 이상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1%가 극우 성향으로 분류됐다. 놀라운 것은, 극우 성향으로 분류된 20대(28%) 응답자가 70세 이상(2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타인을 배척하는 ‘극단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A씨처럼 별생각 없이 오간 가벼운 말들이 모여 어느새 배제와 혐오의 일상을 채우면서다. 극단적 말과 행동이 습관이 되면서, 이는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지향점으로 작용한다. 개인의 정서와 언어 습관이 국수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극우 성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치적 이념에 벗어났어도
혐오·조롱 언어는 ‘극우’라 볼 수 있어
극우는 극단적인 우익 사상을 가진 정치적 이념을 칭하는 용어다. 하지만 오늘날 청년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보면 그 기준은 훨씬 흐려져 있다. 혐오·조롱·폄하와 같은 표현 그 자체가 타인을 향한 적대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홍지오(사회학 2022) 씨는 에브리타임(에타)과 같은 커뮤니티가 편 가르기의 온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에타에서 논리가 결여되고 감정적으로 고조된 상태에서 쓴 것 같은 성소수자,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을 자주 봤다”며 “익명성 뒤에 숨은 성별, 문·이과, 학과 간 갈등 같은 편 가르기의 온상”이라고 말했다. 이덕수(미디어학 2020) 씨도 “에브리타임에서 보수 진영을 ‘내란견’이라고 부르고, 진보 진영은 ‘배급견’이라고 폄하하는 걸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화비평가 이택광(영문학) 교수는 극우 개념을 “정치만이 아니라 일상 공간에서도 정의할 수 있다”며 “극우는 학술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시즘에도 정치적 체계로서의 파시즘과 생활 방식으로서의 파시즘이 있다”며 “한국 정치 체제는 극우화의 최악은 피했지만, 일상에서는 극우 형태들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정치 체제의 면에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더라도 일상 속 극우가 사라지지 않으면 정치 체제 역시 언젠가 극우적 위협에 다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즉, 극우를 하나의 정치 성향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감정의 극단화, 타인에 대한 적대감, 배제적 언어의 일상적 사용이라는 정서적 기준에서도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화가 혐오·차별 정서로
배타적 성향이 극우화 부추겨
청년들은 스스로를 극단적 성향과 거리가 먼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일상에서 떠오르는 감정과 판단은 의외로 극우적 정서와 닮아있다. 김태훈(사회학 2022) 씨는 “의식적으로 혐오표현을 자제하려고 하지만, 내가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분명히 동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형진(한국정치학) 교수는 “한국 극우 정서는 외국 극우와 결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임 교수는 “극우 특징 중 하나는 약자를 공격의 타깃으로 삼는 것인데, 최근에는 중국을 향한 혐오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조별과제에서 처음엔 모두를 챙기고 싶었으나,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외국인 학생과 함께 하기를 꺼리게 됐다”며 “같은 팀이라는 이유로 동일한 점수를 받아갈 땐 분노가 조금씩 쌓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내 안의 작은 극우성’은 누군가를 명확한 적으로 삼거나 특정 이념을 따르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적 단정, 타자에 대한 거리두기, 무의식적 배제 같은 작은 감정적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밈’처럼 소비되는 극우 표현
유튜브로 확산, 미디어 교육은 부재해
‘틀딱’, ‘○○충’, ‘원래 ○○들은~’ 최근 대학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들이다. 처음에는 농담, 소위 말하는 ‘밈(meme)’으로 시작됐지만, 반복되고 소비되면서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최승우(물리학 2020) 씨는 “대상자가 친한 친구라면 서로 재밌게 놀리면서 혐오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면서도 “일방적인 혐오 표현, 의미 없는 조롱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윤철(한국정치)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교육 공백과 감정 자극 콘텐츠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김 교수는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시민성이나 민주주의 감수성을 기르는 과정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안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특히 유튜브 등에서 유통되는 극우 콘텐츠가 청년들의 정서와 언어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극우 유튜브는 돈을 벌기 위해 분노를 자극하는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그러다 보니 청년들은 자신과 비슷한 언어를 쓰는 사람 편에 서기 쉽고, 자연스럽게 극단적 표현을 정당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밈처럼 소비되는 표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정서적 극단화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통로가 되는 거다. 청년들의 언어와 정서 속에 스며든 극우 정서는 단순히 말투나 농담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감정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서가 왜 청년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경쟁과 불안, 사회적 고립, 능력주의, 온라인 문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다음 2회차에서는 이러한 청년 세대의 구조적·사회적 배경을 살펴보고, 극우적 감정이 만들어지는 경로를 깊이 있게 알아보고자 한다.
권도연 기자 khudy94@khu.ac.kr
이환희 기자 hwanhee515@khu.ac.kr
하시언 기자 hse0622@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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