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통화가치 급락을 배경으로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했다. 인터넷 접속이 전국적으로 차단됐고, 뒤이어 정부가 실탄을 포함한 강경 진압에 나섰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란과 이스라엘의 핵 무기화 논란과 미국의 핵 협상이 결렬될 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축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우리신문은 이란에서 온 유학생 A씨를 만나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된 계기와 함께 이란 내부 상황에 대해 물었다. 단, 인터뷰이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할 시 고국인 이란에서의 불이익이 충분히 예상되는 관계로 익명으로 처리한 점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인터넷이 끊긴 뒤 2주 동안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그때는 ‘이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죠.”
한국에 거주 중인 우리학교 이란 유학생 A씨(익명)는 지난 1월 8일 이란의 대규모 시위·진압 국면을 이렇게 기억했다. A씨에겐 가족의 안부, 고향의 소식, 친구들의 생존이 한꺼번에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미래가 안 보였다”
이란에서의 불합리한 경험들
A씨는 어린 시절부터 테헤란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무렵부터 “미래가 보이지 않고 자유가 없는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유학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약 1년 반 가량 어학연수를 한 뒤 이란으로 돌아가 학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란에서의 학부 시절은 “노력으로 쌓은 결과가 언제든지 불합리한 기준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A씨는 “캠퍼스에는 학생의 복장과 행동을 감시하는 직원들이 있었고 히잡 착용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실수로 스카프가 내려가는 경우에도 학생증을 압수당해 수업이나 시험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다”며 “학생증을 돌려받기 위해 사과해야 했고, 그 과정이 기록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따라다녔다”고 한다.
졸업 이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사처럼 국가와 관련된 직업을 원하면, 능력보다 사상과 신념이 체제와 일치하는지 검증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두려움 없이 공부하고 오직 실력과 노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유학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시위 이유 ‘물가’만은 아냐
정치 시스템 불만 때문
시위가 격화된 1월 8일, 이란은 전국적으로 통신망이 차단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A씨는 “한국에서 공부 중인 다른 이란 유학생 친구는 매일 1시간 넘게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통화 비용이 너무 올라 이제 하루 1분만 통화한다”며 “그 얘기를 듣고 몇 시간 동안 친구와 함께 울었다”고 회상했다. A씨 본인도 “인터넷이 끊기고 대규모 시위가 있던 때 2주간 부모님과 아예 연락이 안 됐다”고 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은 비유가 아닌 현실이었다. A씨는 “상상이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가던 시간”이라고 했다. 억지로 잠을 청해도 꿈속에서 텅 빈 이란 집과 함께 사라진 가족의 모습이 자꾸만 그려졌다. A씨는 “예전에 엄마가 보내줬던 음성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으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했다”고 전했다.
이번 시위의 불씨는 경제적 고통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로이터는 테헤란 바자르에서 시작된 시위가 통화가치 급락과 높은 물가에 대한 불만과 맞물렸다고 전했다. 세계은행 지표(WDI) 기준 이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부터 4개년 평균 약 41%로, 매년 상승했다. 같은 지표에서 한국은 4개년 평균 약 3.38%이다.
다만 A씨는 시위의 출발점을 ‘물가’로만 좁힐 순 없다고 봤다. A씨는 “경제가 무너지는 감각은 오래전에 이미 느끼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구기연(인류학) 교수는 “물가 폭등뿐만 아니라, 1979년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뀌며 신정 체제 속에서 정치 시스템과 사회 부패에 대한 불만이 쌓여 왔다”며 “이란 국민들이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폭발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어 이란의 현재 시위는 “굉장히 복합적인 요인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이에 더해 구 교수는 “지난해 6월 이란이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전쟁을 겪으며 그 당시 국가적 위기가 왔었다”며 “오히려 6월 전쟁 당시보다 12월의 환율이 더 많이 올라 불안정했던 국가 시스템에, 경제적인 위기까지 닥쳐 전국적 시위로 퍼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위 국면에서 강경 진압과 사상자 증가에 대한 보도도 잇따랐다. 총상 환자로 병원이 넘쳤다는 의사의 증언이나 13일 이란 국영방송도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A씨는 “목숨이 걸린 일이지만 ‘이대로 사는 건 죽느니만 못하다’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갔다고 친구들이 말했다”며 “무서울 게 없다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구 교수는 “1979년에 세워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체제는 견고한 시스템”이라며 “이슬람 공화국에는 일반 군대와 이슬람 정권을 수호하는 혁명 수비대도 있어 체제 붕괴는 쉽지 않을 것”이며 “당분간은 유지될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관심을 가져주세요”
A씨는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큰 행운’이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지만, 한편으로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이어 “이란에 있는 가족, 친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억압 속에서 싸우고 있는데, 나만 안전한 곳에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돌아가서 함께 버티고 싸워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과, ‘지금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지는 마음’ 사이에서 흔들린다고 했다. 동시에 “이 자리에 있는 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다”고 말했다. 안전은 확보됐지만, 마음의 평온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신문 독자들에게는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바라는 관심은 거창한 행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이 일들이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또 다른 폭력과 희생을 정당화하는 기회가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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