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특별기획] ‘명분과 현실’ 엇갈린 세 번의 개편…희미해진 교양의 본질
후마니타스 15년을 묻다⑥ 교육과정 개편

# 2011년 출범한 후마니타스칼리지(후마)는 “한국을 대표하는 교양교육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구성원의 자부심으로 자리잡았다. 우리신문은 15년이 흐른 지금, 교양교육의 전범(典範: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으로 불리던 후마가 설립 당시의 철학과 역할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지 되짚고자 한다. 이번 2부 2회차에선 후마의 각 교육과정 개편에서 놓친 점이 무엇인지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다룬다.
후마는 출범 이후 크게 세 차례의 교육과정 개편을 거쳤다. 2016년에는 ‘빅뱅에서 문명까지(빅문)’를 중핵교과에 포함하고 독립연구를 도입했다. 2019년에는 ‘교육에서 학습으로’를 내걸고 필수교과와 수업방식을 바꿨다. 2024년에는 배분이수 영역과 이수학점을 조정하고 자연과학 강좌 비율을 확대했다.
4년에 1번씩 돌아오는 개편은 후마가 앞으로 어떤 교양교육을 제공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세 차례 개편에서 고민한 후마의 발전방향이 실제 개편 내용과 간극이 있었다는 것이 구성원의 중론이다. 후마 교수진들을 만나 물은 결과 ▲개편 목적과 실제 교육현장 간 괴리 ▲양캠퍼스 간 거버넌스 및 교육방향 차이 ▲후마의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 ▲행·재정 지원의 한계 ▲학생 의견 반영 부족 ▲전공과 교양 학점 배분에 대한 입장 차이 등의 문제가 지적됐다. 우리신문은 개편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개편 목적과 실제 교육현장 간 괴리 ▲후마의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를 중심으로 각 개편 시기를 돌아봤다.
‘빅문’ 도입 혼선·평가 전환 무산
개편마다 엇갈린 이상과 현실
세 차례 교육과정 개편마다 후마는 시대 변화와 교육환경의 변화를 반영하고자 했지만, 개편의 취지가 실제 교육과정과 교육현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2016년에는 융복합 시대에 맞춰 자연과학을 교양교육에 포함한다는 취지로 ‘빅뱅에서 문명까지(빅문)’를 신설했지만, 대형강의 확대 부작용이 있었다. 2019년에는 ‘교육에서 학습으로’를 내걸고 역량 중심 평가를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2024년에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늘리고 학생 수요와 사회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명분으로 AIㆍSW 관련 교과를 확대했지만 시대 반영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첫 대규모 개편(2016년도)의 핵심은 제3의 중핵교과 ‘빅문’ 신설이었다. 빅문은 자연과학을 후마의 교양교육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였지만 이를 실제 수업으로 구현할 교수진과 강의실, 수업 방식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대형 강의와 팀티칭으로 출발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4년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행ㆍ재정 발전계획안(발전안)에 따라 당시 후마 개설 강좌 200여 개를 조정했다. 한 강좌에 더 많은 학생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강좌 수를 줄였다. 이에 100명 이상이 수강하는 대형 강좌는 서울캠 3개에서 58개로, 국제캠 0개에서 6개로 늘었다. 당시 우리신문은 대형 강의가 학생과 교수 간 소통을 어렵게 하고 일방적인 강연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보도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100명 이상 대형강의, 서울캠은 2013 대비 19배 증가/대학주보 1563호/2014. 03.17.)
빅문을 대형 강의로 운영할 수밖에 없던 배경에는 여러 전공의 교수가 각자의 전문 분야를 맡아 가르치는 팀티칭 방식이 있었다. 빅문은 여러 자연과학 분야를 다루는 만큼, 초기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수업의 해당 부분을 나눠 맡았다. 이과대학 권영균(물리학) 학장은 “처음에는 교수진 7명이 각 파트에 해당되는 부분을 맡아서 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빅문을 신입생 전체를 대상으로 운영하면서 충분한 교수자를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권 학장은 “2016학번 신입생부터 강의 대상을 확대하려니 교수진 수가 부족했다”고 밝혔다. 당시 교수진으로는 신입생 전체를 여러 강좌로 나눠 수용하기 어려워 대형 강의 형태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빅문 대형 강의는 각 분야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한 팀티칭과 신입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필수교과라는 운영 조건이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이미 후마에서 대형 강의의 소통 문제가 지적된 상황에서 빅문 역시 대형 강의로 출발했고, 실제 수업에서도 교수와 학생 수에 따른 혼란이 나타났다. 2017년 대학주보 설문조사에서도 빅문에 만족하는 학생은 26%에 그쳤다. (관련기사: 제3 중핵교과 ‘빅뱅에서 문명까지’ 넘어야 할 산 많아/대학주보 1618호/2017. 04.03.)
‘교육에서 학습으로’라는 구호 아래 이뤄진 두 번째 개편(2019년도)은 학생 역량에 방점을 뒀으나, 이를 뒷받침할 평가 방식까지 전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였다. 당시 후마 재도약을 위한 실행위원회 TF팀이 출범해 기존 상대평가에서 벗어나 자기평가, P/F학점제 등 다양한 평가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캠 후마 정복철 학장(당시 부학장)은 “2019년 개편에서 제시한 역량 중심 교육의 핵심은 학생의 역량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학생의 역량을 단순한 암기 시험이나 글쓰기 시험만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양캠 후마 간 의견 대립이 이어지며 평가방식 전환은 무산됐다. 우리신문에 따르면, 당시 국제캠 후마 학장이었던 김성수 현 교무처장은 “실질적인 시간이 부족해 2020년도에 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지만, 현재까지도 양캠 의견은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관련기사: 후마 개편안 본격 시행, 수강 정원 축소·‘세계와 시민’ 신설/대학주보 1643호/2019.03.04.)
2024년은 ‘학생의 자율성 강화’를 목표로 학점 이수 요건을 완화했다. AIㆍSW 관련 교과와 마이크로디그리, 예술체험 영역을 확대하고 사회 변화와 학생 수요를 반영한 신규 과목도 신설했다. 하지만 학생 부담 완화를 이유로 줄인 교양교육 이수 학점은 그 자체로 후마의 역할 및 위상 약화로 이어졌다. 또 신설된 과목 또한 시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 학기 우리신문 설문조사에서 2학년 이상 재학생 60.7%가 ‘현재 후마 교육이 인공지능 시대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지난 학기 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서인(중국어학 2022) 씨는 개편된 교육과정에 대해 “후마 교육과정의 목적은 인간만의 사고와 추론 과정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며 “기술 도입을 넘어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상적 기틀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특별기획] “그냥 교양수업 아닌가요?” 희미해진 후마의 의미, 학생 불만은 ‘평가’와 ‘강의’ 방식에 집중/대학주보 1760호/2026.05.11.) 결국 시대 반영이라는 명목 하에 내실 있는 개선이 아닌 이수 학점만 줄이면서 공통 교양 교육의 입지만 축소시킨 셈이다.
후마 역할 두고 엇갈리는 시각
“전공 교육의 연장선” VS
“인간·사회를 향한 사유”
후마를 바라보는 구성원의 시각 차이도 교육과정 개편에 영향을 미쳤다. 일반 단과대학 전공 교수진은 전공에서 다뤄야 할 내용이 많은 만큼 교양 필수학점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우기동 전임 TF팀장은 “전공에서 해야 할 것이 많은데 교양 필수학점이 많다 보니 전공에서 해야 할 것을 많이 못한다는 지적이 옛날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후마 교수진은 교양교육을 단순히 전공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서울캠 후마 이영준 전임 학장은 “각 전공 분야에서 가르치지 않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자질을 가르치자고 하면서 후마니타스가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후마를 “쉬운 기본을 가르치는 과정이라기보다 깊이 있는 학문을 바라보는 사유 방식과 철학을 담당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차이는 교육과정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2016년 빅문 도입이 대표적이다. 자연과학의 주요 개념과 패러다임을 비전공자에게 가르치기 위해 자연과학 전공 교수들이 교육과정 구성과 강의에 참여했다.
융합교육이 강조되던 당시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고자 함이었다. 전공 교수들이 맡게 된 배경에 대해 권 학장은 “학교 측의 요구가 있었다”고 했다. 당시 빅문을 담당한 이석근(생명과학) 교수는 후마의 일반적인 수업에 대해 “일방적인 어떤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의 교육이 아니라 계속 소통하면서 같이 토론하는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면서도 “애초 빅문의 성격 규정 자체가 후마와는 다르게 설정돼 있다”고 말했다. 빅문이 기존 후마의 교양교육과 다른 성격으로 설계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빅문이 필수교양으로 추가되면서 기존 교과목의 학점도 조정됐다. 후마 교양교육연구소 편집위원장인 이기라(사회학) 교수는 “학점이 정해진 상태에서 빅문을 도입하려면 기존 강좌를 줄여 학점을 확보해야 했다”며 “그 결과 기존 2학점짜리 외국어 교과목 2개가 3학점의 ‘대학영어’ 1개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새로운 교과목을 추가하기 위해 기존 교육과정의 학점을 조정한 것이다. 이 교수는 당시 상황에 대해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후마 역할에 대한 고민은 2024년 개편에서도 이어졌다. 학생들의 교양 이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배분이수 영역은 7개에서 5개로, 이수학점은 12학점에서 9학점으로 축소됐다. 시대 반영을 목적으로 한 AIㆍSW 관련 교과 확대도 있었다. 후마 행정실은 “졸업을 위해 필요한 총 학점이 줄어듦에 따라 학생들의 교양교육 이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서울캠 후마 김진해 부학장은 필요에 따라 새로운 교육을 도입할 때 교양영역인 후마를 우선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학장은 “새로운 교과목을 도입할 때 전공 단위보다 교양영역인 후마를 다루기 편하거나 부담 없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며 “넣을 게 있으면 후마에 넣고 뺄 게 있으면 후마에서 빼는 식”이라고 말했다. 전공에서 이수해야 할 교육과 후마가 담당해야 할 공통 교양교육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많은 학점을 배분할 것인지는 후마 출범 이후 반복해서 제기된 문제였다.
세 차례 개편의 문제는 결국 후마가 어떤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지에 대한 정체성을 모호하게 했다는 데 있다. 후마 교수진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태다. 우 전 팀장은 “학생 수가 줄어 중·고등학교 수업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대학교육은 일방적인 강의만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양교육이 변화의 중심에 서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신문이 지난 학기 교수 1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 조사에서도 후마 교육이 학생들에게 관성적인 필수과목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교수 다수가 후마 교육이 관성적인 필수과목으로 전락했다는 데 동의했으며, 후마 제도와 운영 전반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82.5%에 달했다.
후마는 설립 초기 단순히 선택가능한 교양과목 제공의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 아니다. 후마 설립자이기도 한 조인원 이사장 또한 지난학기 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문과 인간을 위한 후마 본연의 정신을 기억하되, 변신을 통해 문명사적 변화의 원리와 실천 방안을 찾아 나서는 후마의 생명력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특별기획] 조인원 이사장 인터뷰, “후마는 학문다운 학문의 초석을 놓는 일”/대학주보 1761호/2026.05.26.) 후마의 다음 교육과정 개편은 시대 변화에 대응하면서도 후마가 어떤 교양교육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보다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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