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특별기획] “후마는 학문다운 학문의 초석을 놓는 일”
창간 71주년 특별기획
후마니타스 15년을 묻다
① 학생들이 바라보는 후마
② 교수들이 바라보는 후마
③ 조인원 이사장 대담
#2011년 출범한 우리 대학교의 후마니타스칼리지(후마)는 “한국을 대표하는 교양교육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구성원의 자부심으로 자리잡았다. 우리 신문은 15년이 경과한 지금, 후마가 설립 당시의 철학과 역할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지 되묻는다. 지난 1회차에선 후마를 바라보는 학생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이번 회에서는 후마를 설계하고 실행한 조인원 이사장(당시 총장)을 만나 15년 전의 상황을 회고해보았다.

▲지난 15일 우리신문은 경희학원 조인원 이사장과 후마니타스칼리지 15년의 의미를 두고 대담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권도연 대학주보 편집장, 조인원 이사장. (사진=커뮤니케이션센터 제공)
Q. 타 대학의 교양 교육이 폭넓은 지식 함양에 방점을 둔 것과 달리 후마는 ‘학문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마를 창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대학은 새로운 사색과 사유의 장을 여는 곳입니다. 학문 그 자체에 대한 근본을 묻고 답하는 곳이죠. 그런 기대로 젊은 시절 대학 공부가 궁금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랐죠. 교수로 재직하게 됐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공 진입에 앞서 학문함의 진지한 마음 자세와 깊은 사색, 사유에서 오는 배움의 깊이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아쉬웠고 언젠가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고민이 깊었습니다. 다행히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죠. 학문함이란 무엇이고, 어떤 물음을 물어야 하는지, 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고 답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 사유의 깊이, 인식론과 방법론은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정답을 찾는 공부가 아닌 학문함 그 자체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깊은 앎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경험을 학생들에게 주자. 그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학문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죠. 평생 살아가면서 삶과 사회, 세계의 길을 고민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는 길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학문적 과업을 성찰하는 인간상은 경희의 오랜 전통이기도 해요. 경희의 오랜 화두인 “학문과 양심의 자유”, 더 나은 인간의 세계를 위한 “문화세계의 창조”. 그 지향은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인간적 과업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들이 모여 후마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죠.
Q. 후마니타스칼리지는 국내에서는 이례적인 ‘교양교육 전담 독립 단과대학’입니다. 단순히 교양 과정을 개편하는 수준을 넘어 왜 단과대학이라는 제도적인 틀이 필요했는지, 당시 이사장님께서 구상하셨던 대학 교육의 본질적 전환은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A. 단과대학이라기보다는 지식의 지평을 연결하는 ‘칼리지’ 개념으로 접근했어요. 우리 대학은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자연과학, 공학, 의생명과학, 체육학을 비롯해 다양한 단과대학이 있어요. 하지만 모든 학문의 근간이 되는 지식의 출발점은 같다고 볼 수 있죠. 넓게 보면, 인문학과 과학의 공통 분모를 배우고 경험할 때 전공의 깊이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단과대학이 아니라 후마니타스칼리지라고 명명했던 거예요.
전공 분야엔 분화된 방법론과 인식론이 있어요. 하지만 학문 그 자체를 넓게 볼 때 학문의 저변과 접근 방법, 이를 통해 인간과 사회, 세계를 어떻게 전공 과정과 연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공 진입 전에 익혀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후마 과정은 여러 단과대학 교육과정에 가장 근본적인 학문이죠. ‘쉬운 기본’이라기보다는 ‘깊이 있는 학문을 바라보는 사유 방식과 철학’을 담당하는 것이죠. 그 부분이 고등교육, 고등학술 기관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질문에 직접 답을 하면, 후마는 대학 교육의 본질적 전환이기보다는 전공과 사회 진출에 필요한 사유와 인식 능력을 키워 학문다운 학문을 할 수 있는 초석을 놓는 일입니다.
Q. 후마 설립 당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반대 의견을 어떻게 설득하셨고, 구성원 간 의견 공유의 과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일단 제도와 기구가 만들어진 후에는 일정한 관성과 관습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후마 설립 전 이야기예요. 전공 차이로 교양교육에 관한 인식이 달랐어요. 학문함의 근본은 다를 수는 없는 것인데, 인식 차이는 아주 오래도록 좁혀지지 않았죠. 지금도 만일 그렇다면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는 종종 익숙한 것이 옳다고 착각하는 듯해요.
후마 설립 당시 인식 차이를 좁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공청회도 하고 학생들 얘기도 자주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총장과의 대화, 특별 강연과 질의응답 같은 자리에서 학생과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후마 출범식 때 일입니다. 오후 5시쯤 끝나서 나오는데 공영 방송 뉴스 프로그렘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언론 매체에 처음 노출되고 나서 각 언론사 취재도 많았고, 기사 보도도 많았어요. 그때는 인문학의 실용성 문제가 사회 공론의 장에 넓게 퍼져 있던 때죠. 대학 내 우려의 시선도 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어요. 뜻있는 언론과 지식인들이 호응했죠. 돌이켜 보면, 그런 일이 변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해요. 물론 설립 초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구성원, 특히 학생들의 후마에 대한 자긍심도 빠르게 자라났던 것으로 기억해요.

▲조인원 이사장은 “후마는 대학 교육의 본질적 전환이기보다는 전공과 사회 진출에 필요한 사유와 인식 능력을 키워 학문다운 학문을 할 수 있는 초석을 놓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진=커뮤니케이션센터 제공)
Q. 후마 출범 당시 설계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저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죠. 총장이 직접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초대 학장님과 40~50여 명의 교수님들이 1년 남짓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셨죠. 1박 2일, 2박 3일 워크숍도 마다하지 않고, 타 대학이 부러워했던 훌륭한 교재도 만들었습니다. 안정된 후에도 후마 교육의 깊이를 더하는 노력은 계속 이어졌어요. ‘인간의 가치 탐색’, ‘우리가 사는 세계’, ‘시민교육’, ‘성찰적 글쓰기’…. 그런 교과 범주가 성숙한 학문함과 새로운 시민성 함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우리 사회 대학가에 유례없던 창조적 과업에 도전한 것이죠. 이와 함께, 학생들의 현장 학습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죠. 후마니타스칼리지의 또 다른 배움의 축인 ‘실천 인문학’을 염두에 두면서 지역사회, 국제사회 현장 학습을 통해 이론과 실제를 결합해 보는 새로운 시도도 하게 됐죠.
Q. 설립 당시의 목표 중 하나는 지구적 실천인을 양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사장님이 생각하시는 실천하는 후마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A. 앞서 짧게 언급했지만, 이론과 실천, 학문과 실천, 이런 주제는 엄격하게 양분할 수는 없는 것이죠. 우리 기억 속에, 현대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엔 아담 스미스도 있고 카를 마르크스도 있죠. 한 사람은 학문을 주로 한 분이고, 한 사람은 학문과 이에 관련된 실천을 병행한 사람이죠. 그런데 두 사상가의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크죠. 삶의 현장에 나가 움직이는 것만이 실천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여러 형태의 현장 학습과 같은 활동이 학생들에겐 대단히 중요한 것도 사실이에요. 예를 들면 후마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했을 때 지역사회 문제를 현장에 가서 리포트도 쓰고 봉사 활동도 하는 그런 활동은 매우 소중한 기회입니다. 지역사회를 넘어 국제사회 현장, 다양한 문명과 종교 발상지에 가서 어떤 사유와 인식, 활동이 왜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죠. 지구촌 곳곳의 문제 해결을 위한 현장 체험과 국제기구, 시민 단체, 기업, 연구소, 싱크 탱크에서의 경험…. 그런 경험도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겐 소중한 기회일 거예요. 앞으로 대학이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 아닌가 해요.
Q. 여러 단과대학과 서울·국제 두 캠퍼스의 학생들을 후마가 하나의 공통 분모로 묶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설계 당시 이런 부분도 염두에 두고 설계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A. 당연히 그랬습니다. 총장 재임 시절, 하나의 경희를 추진했어요. 법적으로도 통합을 이뤘지요. 양 캠퍼스 학생들과 자주 만났어요. 후마라고 하는 것은 학생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동 학습 공간입니다. 학습의 본질이란 ‘모름의 세계’를 끌어안고 그것이 이끄는 곳까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인문학은 인간사에 얽혀 있는 모름의 세계, 미지의 영역을 주시하고 통찰하는 지적 역량이라고 볼 수 있겠죠. 과학, 특히 과학기술 영역은 이론과 가설, 실험과 검증, 반증을 통해 모름의 영역을 앎의 영역, 삶의 실용 가치로 전환해 내는 학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 다른 관심사지만, 하나의 영역에선 두 학문 분야가 만납니다. 앎과 모름, 모름과 앎의 경계에 관한 치열한 학문적 노력이죠. 양 캠퍼스는 전공 면에선 서로 다른 특색이 있죠. 하지만 학문의 근간인 인식과 사유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는 측면에선 같습니다. 물리적 거리를 초월해 통합이 필요한 이유죠.
조금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인문학의 뿌리와 과학의 뿌리는 같아요. 모든 인문·사회 분야나 자연과학 계열 박사 과정을 마치면 라틴어 Philosophiae Doctor의 줄임말인 Ph.D., 철학 박사라고 하죠. 인간과 세계, 대자연의 궁극적 진리를 탐색하는 일은 전공 분야와 상관 없이 가장 근본이 되는 철학입니다. 인위적으로 전공을 엄격히 분리하는 문화는 산업화 시대의 학문적 관행일 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수렴과 융합, 통합적 사유를 필요로 해요. 후마가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 국제캠퍼스와 서울 캠퍼스 간 교류와 협력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
Q. 15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의 혁신적인 시도들이 하나의 관행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설립자로서 구성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지금은 ‘아주 큰 전환의 시대’입니다. 전례 없는 위기와 기회, 기회와 위기 요인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죠. 인간의 생존과 실존 가능성이 불투명해졌어요. 미래를 위협하는 불안정한 문명사적 국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후마 설립 초에도 그런 위기의 조짐이 당연히 있었어요. 그래서 세계와 인간, 새로운 시민성이란 큰 주제를 놓고 고민했지요. ‘문명사 성찰’. 유례없는 위기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 후마 교육의 또 다른 근간이었죠. 그 정신은 이어가되,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합니다.
변화의 핵심엔 사유와 인식의 지평에 대한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대사회, 현대문명이 초래한 경계와 환원, 기계론적 사고가 초래한 다양한 대립과 충돌 문제예요. 그런 사유의 한계는 이제 극복돼야 하죠. 생각의 문을 열고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연결과 상호작용의 촘촘한 관계망 속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 그런 인식이 위기를 넘어 새로운 기회의 지평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융합적 사유’, ‘전일적 사유’에 대한 깊은 배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차원에선 미래세대가 필요로 하는 ‘미래 예찰 기법’에 대한 학습 기회입니다. 기성세대가 살아왔던 미래, 미래 세대가 살아갈 미래는 사뭇 다르죠. 복합 위기, 특이점이란 화두의 파고가 크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현실적 기회와 도전에 조응하면서, 기후, 생태, 파괴적 과학기술이 초래하는 유례없는 문명사적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내는 일은 각자 생존과 실존의 문제가 걸린 과업이죠. 미래 세대에 주어진 도전 과제는 인류사적 차원에서 매우 이례적입니다. 변화와 전환이 절실하고 절박한 이유죠. 학문과 인간을 위한 후마 정신을 기억하되, 변신을 통해 문명사적 변화의 원리와 실천 방안을 찾아 나서는 후마의 생명력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이 점을 함께 깊이 고민해 주었으면 해요.

▲대담을 마친 후 이사장은 대학주보 기자들과 함께 캠퍼스를 걸었다. 왼쪽부터 이환희 기자, 조인원 이사장, 권도연 편집장, 이지수 편집간사. (사진=커뮤니케이션센터 제공)
Q. 최근 서울과 국제 후마가 마치 두 개의 다른 시스템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후마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 후마는 전공을 초월하는 배움과 학습의 장입니다.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게 맞죠. 제 생각엔 대학은 고등 교육·학술기관이라는 점에서 미래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 문과 이과가 따로 없어요. 문과생들도 과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론과 가설, 개념과 추론의 인과론적 엄정성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겠죠. 이 문제는 결국 인간과 세계,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깊이 아는 길이기도 해요. 인문학적 성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보편 가치의 인간적 의미를 인문학을 통해서 배우죠. 가장 핵심적인 인문학의 가치는 인간 영혼의 심원한 의미, 공동체의 중요성, 타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키우는 인간적 감수성일 테죠. 그런데 그 감수성이 우리 모두 공감하는 ‘보편’인가 하는 물음은 심오한 과학적 물음과 잇닿아 있어요. 이과 학생들은 역으로 ‘과학의 주체’에 관한 생각을 더 깊이 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두말할 나위 없이 그 주체는 인간이겠죠. 그런 점에서 과학이 중시하는 객관성, 보편 타당성은 주관이 깃든 인간 정신과 의식 세계에 엇물려 있죠. 인문적 성찰과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예요. 서울과 국제 후마는 그런 점에서 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아요. 활발한 교류가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Q. 지난해 대학주보 창간 70주년 특별 대담 당시 이사장님께서는 미래 세대를 위한 대학의 역할을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AI가 지식을 생산하고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는 환경에서, 대학이 길러내야 할 미래 세대의 새로운 인간상은 무엇이라 보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교수님들보다 학생들, 미래 세대가 AI 사용 방법이나 기술에서 훨씬 앞서 있을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 왔으니까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겠죠. 그보다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사안이 더 문제지요.
AI 발전 속도가 예상을 넘어서고 있죠. 물론 관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수년 내 퀀텀 AI 상용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도 해요.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주 모든 입자와 파동의 초 미시 정보를 인류가 접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온다는 것이죠. 그 세계는 양자 과학 인식론이 말하듯이, 중첩과 얽힘 현상에 깃든 기저 원리에 따라 양자 세계의 고유성과 즉시성의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것을 의미해요. 시공을 초월해 연결된 초미립자 세계. 그 세계의 정보, 혹은 ‘암묵적 질서’라고도 불리는 양자장의 원천 세계가 우리에게 던질 문명사적 파장은 실로 지대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 세상이 오면 우리는 그간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난치병과 불치병 극복, 중력과 시공의 조작 가능성, 새로운 우주 에너지원과 같은 것들의 실용화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다양한 학문적 활로를 열어가는 일.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그에 걸맞은 교육과 학습 기회가 마땅히 학생들에게 주어져야겠죠. 문제의 핵심은 인식과 사유, 상상과 통찰의 지평을 얼마나 넓고 깊게 열어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예요. 또 AI와 상호 작용하면서 어떤 질문의 깊이를 만들고, 자신과 세계, 미래를 위한 실천의 지평을 여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가가 개인과 문명사적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Q. 지난해 대학주보 창간 70주년 기념 인터뷰 이후 1년 만에 독자들과 만나십니다. 그 사이 학자로서 관심사나 교육자로서 고민에 어떤 변화가 있으셨을까요.
A. 요즘 일부 국가에서 인간 아닌 지적 존재(NHI, Non-human Intelligence)에 대한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UAP(Unidentified Anomalous Phenomena, 미확인 이상 현상)라고 하는 현상, 이전엔 UFO라고 불렀던 것들이죠. 이들 현상에 오래 관심을 둬왔어요. 처음엔 호기심 차원에서, 후엔 이 새로운 현상이 주는 학문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현상과 사물,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 차원에서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자주 접하는 인간과 인간 간 갈등, 폭력과 전쟁이 왜 끊임없이 반복되는지에 대한 문제가 그중 하나죠. 만일 우주 나이가 138억 년이고, 지구 나이가 45억 년이라면, 이론상 우리보다 앞선 문명은 수없이 많을 거예요. 헤아릴 수 없는 지적 개체가 존재한다고도 상상할 수 있죠. 그런데 ‘모두 “그들은 어디에 간 거지?(Where are they?)”라는 재밌는 질문을 던질 수 있죠. 엔리코 페르미가 오래전 던진 질문이기도 해요. 재밌는 해석 중 하나가 지적 존재의 지능이 고도화되면 첨단 무기를 만들고 자기 이익을 위해 타자를 공격하면서 갈등과 폭력,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이죠. 우리보다 수천, 수만, 심지어 수십억 년 앞선 문명도 결국 다 멸망했을 거라는 것이죠. 지구 행성 위 인간 세상처럼 산업화, 문명화가 빠르게 진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기후 변화나 생태 파괴, 자원 고갈로 붕괴했을 수도 있겠고요. 재미있는 이야기죠.
만일 지구에 개입해 온 지적 존재들이 있다면, 그들은 그런 내부 갈등과 폭력, 행성 보존 문제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어떤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갖고 있을까. 더 나아가선 어떤 체제와 문화로 붕괴와 멸망의 운명을 극복하고 지구에 온 것일까. 그렇게 앞선 문명인데 왜 지구를 정복하지 않고 있을까,(.) 흥미로운 문제가 많습니다. 인간 아닌 지적 존재의 지구 행성 개입 문제에만 국한한 물음이 아니에요. 지구에서 사는 우리의 또 다른 지적 과제라고 생각해요. 학문 영역에서 더 깊이 생각하고 상상할 부분이 많습니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리가 스스로 구축한 시선과 안목, 문제의식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에 붕괴와 절멸의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면, 그 너머 세계관을 찾아 나서는 일은 우리 모두의 생존과 실존이 걸린 절체절명의 과제죠. 그런 과제의 학문적, 실천적 향배를 찾아 나서는 일. 그 일은 큰 화두이긴 하지만, 우리 눈앞에 다가선 현실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세계 여러 나라, 특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심상치 않죠. 지난 4년여, 네 차례에 걸쳐 상·하원 청문회가 열렸어요. 또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은 오랜 기간 국가 기밀에 부쳐온 UAP, UFO, 외계인, 외계 지적 생명체에 관한 자료와 정보, 영상을 공개하겠다고 언명했죠. 그 후 전쟁부 홈페이지에 자료들이 일부 공개됐어요. 며칠 새 수억 명이 접속했다고 해요. 물론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인류사·문명사에 큰 변화의 기류를 만들어 낼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우리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죠. 학문과 인간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사건일 수 있다고 봐요. 우리 일상과 앞서 말한 문명사적 전환의 기류에 관심을 쏟는 만큼, 함께 주시해야 할 또 다른 사안이 아닌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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