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디지털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 ‘왜 만들어야 하나’를 고민
공부하는 사람들⑤ 디지털콘텐츠 전공
#학부 4학년을 마친 학생들은 취업과 대학원 진학의 갈래 앞에 선다. 이중 대학원 진학은 ‘연구자의 삶’을 택하는 것이다. 이들이 한 명의 연구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앎’은 개인의 성취인 동시에 사회 공공재가 된다. 이번 학기 대학주보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다섯 번째 주인공은 게임 창작과 디지털 콘텐츠 제작이 개인의 자아효능감, 동기, 창의성 등 다양한 역량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디지털콘텐츠학과 박설하(박사 7기) 씨다.

▲박설하 씨는 “연구는 디지털 콘텐츠를 단순히 제작하고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의 사고 방식과 삶의 관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함께 다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이지수 기자)
현실 밖의 또 다른 세계
‘콘텐츠’로 견뎌낸 시간
어릴 적부터 박설하 씨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만화부 활동을 했고,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우리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에 진학한 이후에는 전시·게임·시각 콘텐츠 등 다양한 매체에서 콘텐츠가 작동하는 방식을 배우고 탐구해 나갔다. 좋아하는 일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발견했고, 그 관심을 자연스럽게 확장해 온 과정이었다.
20여 년 전, 박설하 씨가 살던 집이 화재로 전소되는 일이 있었다. 박 씨는 “심리적으로 힘든 부분을 만화를 그리거나 애니메이션 작업에 집중하면서 풀어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건강 문제로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는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와 더욱 밀접해졌다. 현실과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감각 자체가 지금의 연구로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박사 2기, 작가 박설하로서의 첫 작업이 이뤄졌다. 미디어아트 게임 전시인 <극장의 집> 프로젝트였다. 전시의 주제가 ‘집’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전시는 작가의 내면 세계를 꺼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집의 변화와 소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AI를 활용한 인터랙티브(상호작용) 콘텐츠도 선보였다. 관람자들은 전시장에서 각자의 기억과 기준에 따라 집을 만들었다. 하나의 전시 안에서 수많은 집이 동시에 생기게 됐다. 박 씨는 첫 개인전을 두고 “같은 개념이라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구조와 의미로 구현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설하 씨의 디지털콘텐츠 연구는 특정 대상에게 어떤 형태의 콘텐츠를 어떻게 설계해야 그들이 더 잘 이해하고, 참여하고, 반응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설계하고 검증하는 과정으로 이뤄지고 있다.

▲첫 개인전 《극장의 집》 전시물 일부 모습. (사진=박설하 씨 제공)
‘왜 해야 하는가’
콘텐츠의 목적이 중요
박설하 씨는 게임 설계 및 제작, 그중에서도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되는 ‘시리어스 게임(기능성 게임)’에 전문성이 있다. 특히 교육·의료·공공 분야의 기능성 게임을 제작하는 일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박 씨는 “목적이 있는 콘텐츠는 애초에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재활 치료 게임을 예로 들면, 아이들이 치료를 해야 하지만 과정이 지루해 참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움직임을 센서로 인식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제공한다면, 치료 과정이 흥미로워지고 자연스럽게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을 가지고 취업이나 창업의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콘텐츠를 만드는 것보다,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설계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예시로 들었던 재활 치료 또한 대학원에서 연구한다면 ‘이 치료에는 이러한 게임이 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검증할 수 있었다.
논문 주제는 향후 진로와 이어지지만, 박 씨가 선택한 콘텐츠 분야는 국내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연구의 방향성과 현실적인 조건 사이에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박 씨는 “국내에서는 아직 사회공헌 관련 콘텐츠에 대한 투자나 수익 구조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않은 상황이라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를 먹으면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많이 생각하는데 사실 대학원 진학 이후에도 내 길을 직접 찾아가야 하는 과정인 것은 똑같다”고 했다.
기술 구현 쉬워진 현재
“생각하는 과정이 더 중요”
박설하 씨는 작년부터 우리학교 아트&테크놀로지 융합전공에서 ‘뉴미디어 아트’ 과목을 맡아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학부 시절과 비교해 디지털콘텐츠학 분야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을 묻자 ‘기술 환경’의 변화를 꼽았다. 그는 “대학 시절 배운 프로그램 중 절반은 지금 사용되지 않을 정도로 변화가 빠르다”며 “이 전공은 결국 평생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씨는 특정 기술 자체보다 ‘그 안에서 어떤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 씨는 “예전에는 복잡한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구현할 수 있었던 것들이 지금은 쉽게 만들어지는 환경이 되었고, 그래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보다 ‘왜 만들고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가’가 핵심이 됐다”고 설명했다.
대학원 생활을 이어가며 박 씨는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만드는 과정 자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작 과정이 이처럼 사람들의 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면 일반인뿐 아니라 발달장애인, 노인 등 다양한 이들도 창작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도 이어졌다. 박 씨는 “참여자들이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기 전과 후의 변화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통해 제작 과정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것이 이번 박사 논문 주제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연구를 ‘좌절과 희망이 반복된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예상한 방식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도 많지만, 작은 구조나 표현의 변화만으로도 사람이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순간이 있다”며 “그럴 때 다시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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