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간 결코 특별한 존재 아냐, 생태계 일원일 뿐” 진화생태학자가 세상을 보는 시각
공부하는 사람들④ 생물학 전공
# 학부 4학년을 마친 학생들은 취업과 대학원 진학의 갈래 앞에 선다. 이중 대학원 진학은 ‘연구자의 삶’을 택하는 것이다. 이들이 한 명의 연구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앎’은 개인의 성취인 동시에 사회 공공재가 된다. 이번 학기 대학주보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네 번째 주인공은 소금쟁이를 통해 진화의 과정과 생태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는 생물학과 진화생태전공 이병호(석박사통합과정 9기) 씨다.

▲ 실험에 필요한 소금쟁이는 이병호 씨가 매번 직접 채집한다. 지난 주말에는 대전 대청호 인근 논에서 한 시간 만에 소금쟁이 100여 마리를 채집했다. (사진=본인 제공)
자연과 함께한 유년 시절
“모든 생명은 진화의 산물”
이병호 씨는 어린 시절부터 강변 풀밭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사마귀와 메뚜기, 잠자리를 채집하고 관찰하기를 즐겼다. 버드나무가 많아 이름 붙은 유(柳)등천을 잊지 못해서 평일에는 연구실에 머무르고 주말이면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가는 일과를 반복하곤 했다. 수생 곤충을 특히 좋아했던 그는 이곳에 서식하는 소금쟁이를 자연스레 연구 대상으로 삼게 됐다.
진화생태학자로서 요즘 그가 몰두하고 있는 주제는 ‘화학적 오염’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몇 년 전 인간이 복용하는 항우울제 성분이 하천으로 유입돼 가재에게 유례없는 대담성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보고된 적 있다. ‘인간들이 우울해질수록 가재들이 용감해진다’는 생태계의 충격은 이 씨의 연구 주제와도 아주 밀접하다. 그는 현재 논에 서식하는 애소금쟁이에게 미량의 살충제(농약)를 노출하고 부모 세대가 겪은 환경적 스트레스가 어떤 생물학적 기억으로 이어지는지, 자손 세대의 형질과 생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학부 시절부터 이 씨는 유전학자 도브잔스키의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는 말에 사로잡혔다. 특히 3학년 때 접한 한창석(진화생태학) 교수의 <진화생물학> 수업은 공부를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였다. 자연선택과 유전적 부동 같은 진화의 메커니즘이 그간 세상에 품어온 수많은 호기심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마주하는 생명체의 모습이나 현상은 모두 진화라는 긴 경로를 거쳐 온 결과물”이라며 “진화를 이해하면 ‘왜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부는 나에게 ‘천직’
실험과 연구가 주는 즐거움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다는 그는 공부를 ‘천직’이라고 표현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행정 업무나 대인 관계의 스트레스를 마주하면 이석증 같은 신체적 반응이 나타날 만큼 예민한 기질을 가졌지만, 공부만큼은 달랐다. 확신을 얻은 건 대학원 진학 후 1년 4개월에 걸쳐 장기 실험을 수행하던 때였다. 이 씨는 “재밌는 일을 하면 힘들지도 않다는데 너무 힘드니까 ‘나와 안 맞는 건 아닐까’ 고민하다가도, 다른 일을 했다면 몸이 두 달도 못 버텼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며 마음을 다잡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 씨가 깊은 애정을 쏟고 있는 ‘진화학’은 교양서적 베스트셀러 목록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대중적 관심이 높다. 그러나 정작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 활동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연구 기반이 서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다윈 후진국’이라는 뼈아픈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다. 이에 대해 이 씨는 “고등학교 교과서만 보더라도 기독교의 영향으로 진화 관련 내용이 소극적으로 서술돼 있고, 진화와 적응을 별개로 구분할 만큼 교육적 기반도 취약하다”고 말했다. 또한 “기초과학의 뿌리가 깊은 유럽이나 응용과학 강국이면서도 기초를 중시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초기부터 공학 중심의 응용과학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기초학문 연구자들의 진로는 대학이나 연구소 등 학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 씨 또한 졸업 이후 2년 단위 계약직인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다. 정규직 연구자로 정착하기까지 길고 불안정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지만, 학문을 향한 순수한 애정은 그 모든 과정을 견디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는 “연구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하는 회의감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영역”이라면서도 “실험하고 공부할 때는 그저 ‘재밌다’라는 직관적인 감정만 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상을 읽는 명쾌한 원리
단언하지 않는 태도 얻기도
이 씨에게 진화는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포괄적이고도 명쾌한 원리다. 이 씨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으로 ‘도덕’ 이런 것들을 꼽지만 사실 인간에게 본질적인 선악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저 집단생활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고 그 질서를 잘 유지하는 개체일 뿐”이라며 “법은 그러한 규칙을 명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이고 도덕은 그보다 넓은 스펙트럼에서 작동하는 집단적 압박이다”고 설명했다. 그의 관점에서 인간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저 생태계의 일원이다. 개미의 진사회성처럼 인간의 선악 또한 환경에 따른 생존 전략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생태와 진화생물학의 교차점에 서 있는 진화생태학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상호작용이다. 연구를 지속하며 이 씨에게는 대상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단언하지 않는 태도가 습관처럼 자리하기도 했다. 그는 “당장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역이나 동네, 심지어 학교마다 문화적 차이가 존재할 만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매우 복잡하다”며 “섣부르게 평가하거나 무언가를 단언하는 게 진짜 위험하고 무식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필수 덕목으로는 회복탄력성을 꼽았다. 생물학의 세계에서는 방대한 경험의 축적과 정밀한 실험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씨는 “수없는 실패에도 다시 실험에 나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과 체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는 ‘순수한 애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개미든 딱정벌레든 잠자리든 본인만의 최애 곤충이 있어 그 존재 자체를 진심으로 아끼는 친구라면 이 길을 즐겁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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