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경희의 유산] ⑫봄에 온 가인(佳人), 그대는 경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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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의 유산 ⑫ 『가곡 <목련화>』
# 9월부터 경희기록관은 우리신문과 함께 ‘경희 유산을 찾아서’를 연재한다. 서울, 국제, 광릉 캠퍼스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자연 유산은 물론 경희기록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 대학의 역사적 기록물, 경희만의 고유한 정신 유산들을 중심으로, 그들에 관한 역사적 사실,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 숨겨진 흥미로운 에피소드 등을 글과 사진으로 소개한다. 1차로 내년 여름까지 연재를 진행하고, 1년간의 연재 결과를 바탕으로 내용과 형식을 보완해 2차 연재를 진행할 계획이다.
▲1975년 교시탑 옆 목련 나무 식수 모습(좌), ‘경희 칸타타’ 작사·작곡 소감을 전한 1974년 5월 30일자 대학주보(우) (사진=경희기록관 제공)
코끝을 스치는 바람 끝에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한기가 느껴지는 초봄. 볕이 잘 드는 본관 앞 목련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우리 대학을 상징하는 꽃으로 목련을 정한 것은 1970년 5월. 하지만 교화 목련보다 우리에게 더 친숙한 것은 아마도 가곡 ‘목련화’일 것이다.
‘목련화’는 1974년 5월 우리 대학 설립자 조영식 박사 작사, 음악대학 김동진 교수 작곡으로 탄생했다. 원래 이 곡은 개교 25주년을 기념해 만든 ‘경희 칸타타 - 경희 사반세기 송가’의 2부 ‘선인송(仙人頌)’ 첫 부분에 삽입된 곡이다.
김동진 교수로부터 작사를 부탁받은 조영식 박사는 처음엔 완강히 거절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첫째, 나는 시인이 아니므로 나보다 시를 더 잘 쓸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둘째, 내가 설립한 학교의 송가를 나더러 쓰라니 아무리 사실대로 쓴다고 해도 결국 자화자찬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김 교수는 뜻을 굽히지 않고 끈질기게 찾아가 작사를 부탁했는데, 그 이유는 경희 설립 사반세기를 축하하는 칸타타인 만큼 그 가사에는 대학을 설립하고 역사를 만들어 온 사람의 의지와 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뜻을 굽힌 설립자가 업무 짬짬이 작사를 진척시켜 갔고, 목련화 부분의 가사는 1973년 7월 출장길에 대서양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 안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1974년 5월 30일, 개교 25주년과 크라운관 개관을 기념하는 특별 공연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경희 칸타타가 처음 연주돼 음대 합창단이 ‘목련화’를 불렀다. 며칠 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작곡가회 주최로 열린 신작 발표회에서 당시 음대 강사였던 엄정행 명예교수가 ‘목련화’를 독창으로 발표했다. 국민 가곡 ‘목련화’의 탄생이었다.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길잡이 목련화는 새 시대의 선구자요 ... 함께 피고 함께 지니 인생의 귀감이로다.”
가사에서 보듯, 목련은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강인한 생명의 힘을 상징한다. 현실의 고난을 이겨내고, 봄을 부르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국전쟁이라는 험난한 시대를 넘어 1970년대 안정과 성장의 시기로 접어든 경희가, 노랫말처럼 선구자의 모습과 하나됨의 열정으로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염원이 곡에 담겨 있다. 세상을 잘 살아내기 위해선 강인함이 필요하다. 동시에 그 너머에 존재하는 너그러움, 하나됨의 미덕도 필요하다. 경희는 이런 정신세계와 함께 80여 년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그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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