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학교에서는 매년 40여 명 내외의 교원이 퇴직한다. 이들은 퇴임과 함께 수십 년간 사용한 연구실을 비워야하지만, 평생 축적한 귀중한 연구 서적과 자료 대부분은 마땅한 보관처를 찾지 못해 부득이하게 폐기 처리된다. 이에 우리신문은 대학 도서관의 장서 포화와 퇴직 교원의 지적 자산이 폐기물로 버려지는 현 실태를 조명하고 그 대안을 알아봤다.

▲현재 장서 포화율이 174.4%에 달해, 매년 퇴임하는 교원들의 연구 서적이 수용되지 못하고 폐기 처분되고 있다. (사진=대학주보DB)
재작년 퇴임한 행정학과 한상연(도시계획학) 교수는 연구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모든 서적을 폐기해야 했다. 우리학교 중앙도서관에서는 따로 책을 보관할 수 없다고 연락받은 데다 자택에도 책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학생들이 활용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구실 짐을 정리하기 전, 중앙도서관 측에 도서 기증이 가능할지 문의했는데 이미 수년 전부터 포화 상태로 어려울 것 같다는 답을 받았다”면서 “오랫동안 모아온 귀중한 서적을 모두 폐기 처분하게 되어 무척 아까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화학공학과 이용택(공학) 교수 역시 퇴임 과정에서 공간을 정리하며 비슷한 난관에 부딪혔다. 이 교수는 “성당과 교회에 무료로 나눔한 일부 서적을 제외하고는 200만 원 가까이 사비를 들여 전공 서적 대부분을 직접 폐기했다”고 말했다.
양캠 중앙도서관 포화
장서 기증 어려운 현실
이들이 오랜 기간 간직해온 장서를 폐기할 수밖에 없는 주요 원인은 우리학교 중앙도서관의 공간 포화상태에 있다. ‘2025년 대학도서관 통계조사 제출 기준(양캠 통합)’에 따르면 우리학교 중앙도서관의 적정 소장 한계 도서 권수는 1,532,516권이지만 현재 소장 도서 권수는 2,672,635권이다. 장서 포화율로 따지면 174.4%에 달한다.
이에 양캠 도서관은 매년 대규모 폐기 처리를 진행 중이다. 서울캠의 경우 최근 3년간 약 11만 권 이상을 폐기했으며, 국제캠 역시 지난해 약 3만 권을 폐기한 데 이어 올해 5~7만 권 규모의 추가 폐기를 검토 중이다. 그럼에도 높은 장서 포화율을 낮추는 데는 역부족이다.
양캠 중앙도서관 측은 오직 물리적 공간 부족만을 이유로 장서 기증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국제캠 중앙도서관 학술연구지원팀 서수환 행정차장은 “기증 자료는 기존 장서와의 중복성, 학술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며 “실제로는 자료의 적합성이 주요 판단 기준”이라고 밝혔다. 서울캠 중앙도서관 역시 “기증 요청이 들어온 경우 확인 절차를 거치다 보면 대부분 이미 소장 도서인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도서관 ‘디지털 전환’ 대안 제시
교수들은 ‘회의적’
양캠 중앙도서관은 장서 수용 공간 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장서 구조의 ‘디지털 전환’을 제시했다. 국제캠 서 차장은 “학위논문의 인쇄본 제출을 중단하고 디지털 원문 중심으로의 수집과 보존으로 디지털 아카이빙을 확대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캠 중앙도서관 역시 “장서 디지털화 사업이 시행된다면 자료의 영구 보존과 원활한 접근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다만 국립중앙도서관과 같은 국가기관 주도로 저작권 문제 해결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서관이 방대한 전공 서적과 단행본을 디지털 파일 형태로 제공하려면 저작권법에 따라 저자나 출판사의 동의를 일일이 받아야 한다. 개별 대학 도서관이 수만 권에 달하는 장서의 저작권자를 추적하고 이용 허락을 받는 데 드는 행정력과 비용을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학교에 기증이 불가한 교수들은 국립중앙도서관 등 외부 기관에 기증하려고도 한다. 그런데 이곳도 장서 포화 비율이 높아 기존 자료와 중복되지 않는 서적만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의 한 자료실 관계자는 “본관 역시 장서 포화 비율이 매우 높아 기증을 받을 때는 기존 소장 자료와 중복되지 않는 서적만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캠 중앙도서관이 대안으로 제시한 디지털 아카이빙에 대해서는 “장서의 희소성과 학문적 중요성을 철저히 검증한 후 실행하거나, 훼손 우려가 있는 오래된 서적 등 실물 보관이 까다로운 책들에 한해서만 디지털화 작업을 진행해 보존하고 있다”며 “범용적인 디지털 아카이빙은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퇴직 교수들 또한 디지털 아카이빙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학생 수요가 높은 전공 서적은 이미 온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교수 개인 자료를 디지털화하더라도 활용도가 높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 교수는 “아카이빙이 실제 이용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아카이빙 과정에서는 저작권 문제뿐 아니라 외부 접근 가능성 등 보안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서 “정교한 시스템 없이 추진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추가 기증 서고 마련도 실현 미지수
장서 보존 방안 논의 필요
이에 퇴직 교수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대안은 단과대학 및 학과 단위의 ‘교수 기증 서고 구축’이다. 이 교수는 “단과대 건물 내에 작은 서고를 마련해 단과대 측에서 자체적으로 선별한 우수한 장서들을 학생들이 접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후마니타스칼리지 임형진(한국정치학) 교수는 “학내에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해 퇴직 교수들의 주요 서적만 비치시켜 종합연구기관으로 활용한다면 장서들이 사장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같은 대안에 대해 일부 단과대학은 현실적인 장벽이 있다는 입장이다. 공과대학 행정실 관계자는 “공과대 건물 내에 공간을 내어 서고를 만들기엔 자리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경대학 행정실 관계자 역시 “단과대학 차원에서 별도의 기증 서고를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방안은 공간 확보 및 유지관리 측면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구체적인 장서 보존 대책이나 공간 확보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퇴직 교원들의 연구 서적이 폐기물로 처리되는 상황은 앞으로도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교원의 지적 자산 폐기를 막고 실질적인 보존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제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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