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고] ‘보이지 않는 감옥’ 가방면(仮放免), 담장 없는 수용소에 갇힌 청년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와 일본의 메이지가쿠인대·릿교대, 반빈곤네트워크가 공동 주최한 ‘한일 청년 반빈곤 교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은 4박 5일간 도쿄와 사이타마현의 빈곤 현장을 방문해 양국 청년 빈곤의 실태를 비교하고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우리신문은 총 3회에 걸쳐 그 여정을 전한다. 두 번째 순서로 '주거'의 관점에서 일본 빈곤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도쿄의 옛 일용직 노동자 집결지인 ‘산야’와 간이숙박소 밀집 지역 ‘도야’. 낡은 건물들 사이로 스미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한일 청년들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지난 2월 초, ‘한일 청년 반빈곤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이 마주한 것은 단순히 낙후된 거리가 아니었다. 그곳은 국가가 ‘관리’라는 이름으로 특정 집단의 생존권을 어떻게 지워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거대한 ‘배제의 전시장’이었다. 이번 여정의 두 번째 주제는 법적 지위와 주거권이 얽혀 만드는 비극, 바로 ‘가방면(仮放免) 제도의 실체’다.
문밖으로 나왔으나 삶은 시작되지 않은
‘보이지 않는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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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사회단체가 운영하는 '가방면자'를 위한 쉘터. 이용 3개월 이후 이주해야하는 제한이 있다.
가방면은 강제 송환 대상자가 질병이나 기타 피치 못할 사유로 수용시설에서 일시적으로 풀려난 상태를 의미한다. 겉으로만 보면 수용소의 높은 담장을 벗어난 ‘해방’처럼 비춰질 수 있지만, 실상은 담장 없는 수용소로의 이동에 불과하다. 가방면자에게는 주민표가 부여되지 않으며, 건강보험 가입도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권리인 ‘노동권’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이타마에서 만난 한 가방면 이주민은 수용소 밖의 삶을 가리켜 “문밖으로 나오긴 했으나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는 늪과 같다”고 표현했다. 일을 할 수 없으니 안정적인 소득이 없고, 소득이 없으니 공식적인 임대차 시장에서 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은행 계좌를 개설하거나 휴대전화를 본인 명의로 개통하는 사소한 일상조차 이들에게는 거대한 벽이다. 이는 개인의 의지나 노력의 부족으로 인한 빈곤이 아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생존의 수단을 박탈함으로써 빈곤을 인위적으로 제조하고 유지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가방면자들은 사회 안에 존재하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할 수 없는 철저한 배제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주거권은 보편적 권리가 아닌
‘운 좋은 인맥’의 산물

▲쿠르드인 가정에 방문했을 당시 대접받은 식사 (사진=윤현정 학생 제공)
일본 내 최대 규모의 쿠르드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와 와라비시 일대는 가방면 제도의 모순이 공간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가방면자가 수용소 밖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신원을 보증하고 생계를 책임질 후견인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법적 지위가 불안정하고 언제든 다시 구금될지 모르는 이의 보증을 서줄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현장에서 확인한 현실은 더욱 참혹했다. 가방면자들의 주거는 국가의 보호나 공적 제도가 아니라, 철저히 사적 네트워크와 동포들의 선의에 저당 잡혀 있었다. 이미 일본에서 체류 자격을 얻고 정착한 동포들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는 소수의 ‘운 좋은’ 경우에만 간신히 지붕 아래 몸을 뉘일 수 있었다. 반면 이러한 연결망조차 갖지 못한 이들은 곧바로 노숙 상태로 내몰리거나, 신원 확인이 허술하고 극도로 열악한 환경의 비공식 숙박 시설을 전전해야 한다. 주거권이라는 인간의 기본권이 국가의 보장 아래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알고 있는가’라는 운에 의해 좌우되는 자원으로 전락한 셈이다. 주거는 더 이상 권리가 아닌, 구걸해야 하는 시혜가 되어 있었다.
해열제로 버티는 밤
미래가 지워진 아이들
가방면 제도의 가장 잔인한 화살은 그 가정의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로 생활하며 일본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지만, 부모의 체류 지위는 아이들의 삶마저 ‘임시 상태’로 묶어두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잠시 평범한 학생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 아이들은 의료와 복지의 거대한 사각지대로 추락한다.
특히 의료 접근권의 부재는 아이들의 생명을 실시간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배제된 가방면 가정에게 병원비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공포다. 아이가 고열에 시달려도 수십만 엔에 달할 진료비가 무서워 병원에 가는 대신 집에서 해열제만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던 어느 어머니의 고백은 현장 참가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픈 아이를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의 무력감은 신체적 고통을 넘어선 심리적 학대와 다름없었다.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며 일본 사회의 규범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단지 서류상의 자격 문제로 인해 사회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현실은, 국적과 시민권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차갑게 인간의 미래를 선별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한국과 일본
‘관리’라는 이름의 닮은꼴 폭력
▲도쿄 산야 지역의 ‘도야’의 내부 모습 (사진=윤현정 학생 제공)

▲‘도야’의 내부 시설. 공용 화장실, 욕실, 세면대를 사용한다. (사진=윤현정 학생 제공)
이번 교류 프로그램은 일본의 문제를 넘어 한국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거울이 되었다. 한국 역시 인도적 체류(G-1) 자격자나 보호일시해제자들이 일본의 가방면자들과 유사한 구조적 소외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취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여 경제적 고사를 유도한다면, 한국은 극히 제한적인 취업 허가를 통해 이들을 저임금, 고위험의 불안정한 노동 환경으로 밀어 넣는다.
방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두 국가 모두 ‘관리’와 ‘억제’라는 명분 아래 인간의 존엄을 지속적으로 침식하고 있다는 본질은 동일했다. 직접적인 물리적 구금 대신 굶주림과 의료적 방치, 그리고 타인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을 강요함으로써 삶을 통제하는 방식은 세련된 형태의 폭력이다. 제도는 스스로를 인도적 조치라고 포장하지만, 그 결과는 한 인간의 선택지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사회적 고립을 고착화하는 구조적 압살에 가까웠다. 산야의 쪽방과 한국의 고시원이 닮아있는 이유는 그곳이 바로 국가의 시선에서 밀려난 이들을 ‘보이지 않게’ 가두는 담장 없는 감옥이기 때문이다.
연결을 넘어
체류와 주거의 존엄을 향해
4박 5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한일 청년 참가자들이 얻은 결론은 명확했다. 빈곤은 단순히 통장 잔고의 문제가 아니라 끊어진 사회적 관계와 박탈된 권리의 총합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국가 중심의 질문을 버리고, “어떤 존재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존엄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가방면자를 비롯한 체류 불안정 이주민들에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제한적 노동 허가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노동을 금지하는 것은 삶의 의지를 꺾는 행위이며, 이는 결국 비공식 노동 시장에서의 착취를 조장할 뿐이다. 또한 체류 지위와 관계없이 최소한의 응급 의료와 아동 교육권이 보장되는 보편적 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특별재류허가 심사 기준을 투명화하여 이들이 ‘임시’의 굴레를 벗어나 사회적 통합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도쿄의 좁은 골목과 사이타마의 낡은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한 것은 절망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서로의 보증인이 되어주며 버티는 이주민들의 연대와, 그들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시민단체의 헌신이 있었다. 빈곤이 쌓은 고립의 벽을 허무는 것은 차가운 제도가 아니라, 서로의 고통에 응답하는 뜨거운 연결이다. 모든 존재에게 안전한 주거와 안정적인 체류가 보장되는 사회, 그것은 우리가 도쿄에서 목격한 부조리를 넘어 한국과 일본이 함께 나아가야 할 공동의 목적지다. 이번 교류는 그 길을 향한 작은 시작이며, 청년들의 연대는 국경을 넘어 더 단단해질 것이다.
김수헌(무역학 2023)
노건우(지리학 2022)
윤현정(무역학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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