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고] 끊어진 사다리 앞의 청춘들, 당사자가 요구하는 ‘존재할 권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와 일본의 메이지가쿠인대·릿교대, 반빈곤네트워크가 공동 주최한 ‘한일 청년 반빈곤 교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은 4박 5일간 도쿄와 사이타마현의 빈곤 현장을 방문해 양국 청년 빈곤의 실태를 비교하고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우리신문은 총 3회에 걸쳐 그 여정을 전한다. 마지막 순서로 '노동'의 관점에서 일본 빈곤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지난 2월 4일부터 8일까지 진행된 ‘한일 청년 반빈곤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은 빈곤 현장을 직접 걸으며 공통의 질문에 마주했다. 왜 어떤 아이들은 출발선에서부터 뒤처지고, 왜 어떤 청년들의 첫 일자리는 권리가 아닌 순응을 요구하는가. 이번 연재의 마지막 주제는 ‘교육과 노동’이다. 교실에서의 배제당한 아이들이 어떻게 취약한 노동시장으로 유입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태어나는 또 다른 빈곤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출발점의 차이
꿈꿀 권리를 빼앗긴 아이들
2017년 일본 내각부 발표에 따르면 생활보호가구의 대학 진학률은 35.3%로 전체 가구 기준 73.0%보다 절반 이상 낮았다. 가구 소득에 따른 학력과 진로 경험의 격차를 학습 지원으로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아스포트(Asuport)’. 사이타마현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아스포트는 생활보호가구 자녀 대상 학습 지원 단체로서, 학습 지원과 자립 지원 뿐만 아니라 체험 학습, 진로 탐색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학습 지원 이전 가정방문을 필수로 거치고 있다. 아이의 배경을 아는 것이 곧 아이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경제적·정서적 환경은 아이의 학습 집중도와 학교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부모가 아프거나 바빠서 아이가 집안일을 도맡는 ‘영케어러(Young Carer)’ 아동은 학업 지속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문부과학성은 일본에서 학교에 가지 않는 ‘부등교’ 초·중학생 수가 2024년 기준 35만 3,970명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부등교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으나, 아스포트는 등교의 조건을 4가지로 정의했다. 준비물이 준비되어 있을 것, 숙제를 끝냈을 것, 아침밥을 먹었을 것, 그리고 “다녀와”라는 보호자의 인사다. 학교와 가정 그 어디에서도 “다녀와”라는 인사를 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아스포트는 유일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
가난은 아이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빈곤이 무력감으로, 무력감이 다시 학업 포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아스포트 학습 지원 인력의 80%는 자원봉사자이며, 그중 절반 이상은 대학생이다. 이들은 1:1로 아이들의 곁을 지키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교실에서 밀려난 아이들이 향하게 될 곳은 어디일까. 우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빈곤에는 ‘배고픔’ 뒤 ‘꿈의 한계’가 숨겨져 있었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 따라 아이의 현재와 미래가 좌우되지 않도록, 교육 기회의 균등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곧 꿈꿀 권리를 보장하는 길이다.
▲’아스포트(Asuport)’에서 학습 지원을 받는 아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사진=전영욱 씨 제공)
시작의 자리에서 처음 마주한 노동의 얼굴
학교라는 울타리 밖으로 떠밀려 나온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신주쿠 가부키초의 밤거리는 눈부실 만큼 화려했다. 그러나 여성 지원 단체 ‘콜라보(Colabo)’의 유메노 대표가 전한 이야기는 그 화려함의 이면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기업들은 학력과 경력을 요구하며 문턱을 높이는 것과 달리, 이곳의 성 산업은 정반대의 기준을 내세운다. “경험이 없을수록, 어릴수록 더 높은 값을 받는다.” 갈 곳 없는 10대들에게 숙식과 용돈을 제안하는 방식은 도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취약함을 돈으로 환산하는 구조다. 사회에서 밀려난 아이들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곳이 성 착취의 현장이라는 사실은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평범해 보이는 아르바이트 현장도 안전하지 않다. ‘회전초밥 유니온’이 드러낸 사례는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우리가 집어 드는 초밥 접시에는 미지급 임금 문제와 심각한 인력 부족으로 과로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땀이 있었다. 일부 프랜차이즈 기업은 청년들을 교체 가능한 인력으로 취급하며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노동조합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SNS를 통해 접한 단편적인 이미지와 달리, 노동조합은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생의 권익도 지키고 있었으며, 실제로 임금 체불 문제 해결과 근로조건 개선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노동조합은 우리의 일상적 노동과도 연결된 존재였다.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청년들이 처음 마주하는 노동 시장은 ‘개인 책임’이라는 프레임 속에 놓여 있다. 과거 버블 경제 시기에는 자유로운 프리터로 인식되었던 비정규직은 경제 위기 이후 실패자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청년들이 정규직이 되지 못한 이유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시선은, 이를 이용해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블랙 기업’들이 자라나는 환경이 되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청년들은 어렵게 얻은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는 법을 내면화하게 된다. 프리카리아트 유니온(Precariat Union)은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며, 노동자는 부품이 아닌 ‘주권과 결정권을 가진 주체’여야 함을 강조했다. 기업별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한 비정규직과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사과와 시정을 이끌어낸 사례는, 첫 일자리가 침묵의 시작이 아니라 권리를 배우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준비되지 않은 채 사회로 나온 대가가 이것인가.” 현장을 떠나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우리의 첫 일자리는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침묵과 순응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환영받는 구조 속에서, 청년들의 ‘처음’은 그렇게 쉽게 소비되고 있었다.
매일 이어지는 노동에도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
불안정한 첫 출발은 어디를 향해 달리는가. '반빈곤 네트워크'가 전해준 이야기와 도쿄의 빈곤 현장에서 만난 워킹푸어의 모습은 상상 이상의 날것이었다. 불안정한 일용직 수입으로는 마련할 수 없는 보증금. 주소가 없으니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어려우며, 안정적인 직장이 없으니 집을 구할 수 없다. 이런 모순의 쳇바퀴 속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은 고사하고, 단 하루라도 벌지 않으면 그들의 삶은 곧장 홈리스(노숙인)로 전락한다.
내몰린 곳에는 넷카페 난민이라는 선택지 아닌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 하루 벌이로 한 끼 값을 치른 뒤 하룻밤 날 곳에 들어가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없는데, 그마저도 사람을 재워도 되는 것일까 싶은 공간이라는 점이 참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서 쪽잠을 청해보지만 더 나은 내일은 꿈꾸지 못한 채 다시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한 활동가는 "이곳은 한 번 미끄러지면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정확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달리고 있는 곳은 쭉 뻗은 직진 차선이 아닌, 이어진 길 하나 없는 둥근 로터리였다.
최근에는 일본의 급격한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번듯한 집이 있고 직장에 다니고 있음에도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식료품 지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지원 단체 '모야이'를 찾는 방문객은 코로나19 초기 100명 정도였으나 현재는 900명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다.
워킹푸어 문제는 월급을 얼마 더 주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지원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다시 맺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물리적인 공간이나 금전 문제를 넘어, 그들이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끊어진 관계의 사다리'를 이어주는 세심한 배려와 연대가 필요하다.
▲2월 8일, 성과발표회를 진행하며 통합적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이노세 교수 제공)
교육과 노동은 하나
정치와 연대의 개입 필요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의 결론은 명확해졌다. 청년 빈곤은 교육, 노동, 복지라는 개별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아스포트에서 목격한 경제적 격차에 의한 학업 포기는 콜라보와 회전초밥 유니온이 고발한 착취적 첫 일자리로 연결되고, 이는 결국 반빈곤 네트워크가 구제해야 할 워킹푸어의 양산으로 이어진다. 교육에서의 배제는 곧 노동 시장에서의 배제이며, 이는 생존의 위기로 직결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노동을 분리하지 않는 통합적 인식과 함께, 시장의 실패를 보정할 정책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동시에 파편화된 개인들을 잇는 ‘연대’의 중요성 또한 재확인했다. “노동자는 고용되는 존재가 아니라 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도쿄 DEW의 철학이나, 단 2명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거대 기업의 임금 인상을 이끌어낸 회전초밥 유니온의 요시다 씨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려워서 싸우지 않으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는 그의 말처럼, 구조적 모순 앞에서도 당사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목소리를 낼 때 변화는 시작된다.
결국 한일 양국의 청년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 노동, 복지를 분리된 영역으로 보지 않는 통합적 정치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홀로 싸우는 청년들에게 “더 노력하라”고 말하는 대신, 서로의 손을 잡는 연대가 뒷받침될 때, 청년들은 비로소 저당 잡힌 미래를 되찾고 사회의 일원으로 바로 설 수 있다. 그러한 요구는 누군가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빈곤을 개인의 실패로 환원하는 말에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청년 정책이 취업률이라는 숫자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질문을 던질 것이다. 현장에서 마주한 얼굴들을 잊지 않고, 그들의 삶을 함께 떠올리며 목소리를 내겠다. 그것이 우리가 이번 여정 이후 선택한 길이다.
이은비(국제금융투자학 2025)
전영욱(인공지능학 2025)
정윤희(국제통상학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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