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학기, 유학생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마음에 학교 프로그램 ‘글로벌 버디’에 지원했다.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아야(Aya, 정치외교학 2023)를 통해 글로벌교육지원팀이 운영하는 ‘SDGs Team Challenge’를 알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 학생과 외국인 유학생이 팀을 이뤄 외국인 유학생의 모국에 방문하고, SDGs(지속가능발전목표)와 관련된 현지 조사를 진행하는 문화 교류 프로그램이다.
우리 팀은 정치외교학과 유학생들로 구성됐다. 모로코인 자흐라(Zahra, 정치외교학 2023), 라오스인 이양(Khamphanthong, 정치외교학 2023), 일본인 아야와 함께했다.
우리의 선택지는 유학생들의 모국인 모로코·라오스·일본이었다. “언제 모로코에 가보겠어, 모로코에 가보자!” 우리는 아프리카 북서쪽 끝, 모로코로 6박 7일 여정을 정하고 여러 도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다른 팀들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을 택했다. 아프리카로 향한 팀은 우리뿐이었다. 팀원은 아니지만 함께 여행하기로 한 독일인 유딧(Judith, 정치외교학 2022)까지 합류하면서, 멤버 구성만으로도 ‘미니 지구촌’이 됐다.
이슬람 문화권이나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영화 『카사블랑카』나 부정적인 뉴스 속 키워드들이 전부였기에, 설렘보다는 긴장이 앞섰다. 자흐라는 출발 전, 모로코에서는 허리를 굽히는 대신 “살람~”이라고 인사해야 한다는 것과 한국의 ‘빨리빨리’ 마인드는 잠시 내려둬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인천에서 도하를 거쳐 카사블랑카까지 총 21시간의 여정이었다. 장시간 비행이 처음이었지만 설레어 힘든 줄도 몰랐다. 캄캄한 밤, 타지키스탄과 인도 사이의 산맥을 지날 때 눈이 저절로 떠졌다. 바깥 창문을 내다보니 아래에는 점박이 불빛들이 있었고 하늘에도 수많은 별들이 보였다. 별이 하도 많아서 하늘과 바닥이 분간이 안됐다. 이상하게 360도 땅 위를 날고 있었나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장시간의 꿈 같은 비행을 마치고 우리는 모로코에 도착했다.

▲마라케시 거리에서 본 붉은 건물 (사진=이서현 기자)
붉은 흙의 도시, 마라케시의 태양
현지 시각 1월 15일, 기차를 타고 도착한 마라케시는 서울과는 채도부터 달랐다. 도시 전체가 붉었다. 흙이 산화돼 붉은빛을 띠는 이곳의 문화를 보존하고자 국왕이 모든 건물을 붉은색으로 짓게 했다고 한다. 여행 첫날 길을 걸으며 우리는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어깨랑 무릎을 가려야 한다며. 그래서 긴 옷만 챙겨왔어”라는 내 말에 자흐라는 “무슨 소리야. 여기 옷은 다 자유롭게 입어. 오히려 한국보다 더 가볍게 입을걸?”하고 웃었다.
미로 같은 골목 메디나(medina·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투박한 붉은 흙벽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장식과 뻥 뚫린 천장이 돋보이는 정원, 전통가옥 리야드(riad)가 나타난다. 자흐라는 이를 두고 “이슬람의 겸손과 사생활 보호가 건축에 녹아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아가디르, 자연과 공존하는 건축
마라케시의 붉은 열기를 뒤로 하고 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광활한 사막지대를 가로질러 자흐라의 고향 아가디르로 향했다. 유딧은 “미국 네바다주 같다”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낮은 사막지대 저 멀리 보이는 하이 아틀라스 산맥은 웅장했다. 4,167m 정도의 높은 산들이 모여 있는 산맥이었다.
아가디르는 대서양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휴양 도시였다. 이곳에서 자흐라의 언니이자 현지 건축가인 리나를 만났다. 아가디르는 1960년 대지진으로 도시의 약 70%가 파괴된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리나는 이후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내진 안전성 확보와 신속한 복구, 기능 중심의 근대적 도시계획이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설명했다.
모로코에서는 비가 올 때만 물길이 생기는 와디(wadi·건천)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리나는 와디가 한때 정비가 필요한 위험 요소이자 개발 제한 구역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이를 녹색 회랑(green corridor)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와디의 자연스러운 물길을 유지한 채, 그 주변에 체육 시설과 휴식 공간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물이 지나가는 길을 막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공간을 만든다”는 리나의 철학은 SDGs 11번(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과 맞닿아 있었다.

▲수도 라바트에 위치한 카스바 우다이아(Kasbah of the Udayas)의 모습. 옛 성주가 거주하던 성채다. (사진=이서현 기자)
상다리가 부러지는 모로코식 환대
자흐라네 가족의 환대는 어마어마했다. 해산물 스튜부터 모로코 전통 파이인 ‘바스티야’, 양고기 자두 타진까지 음식이 끝도 없이 밀려 나왔다. 자흐라의 어머니는 일주일 전부터 이 만찬을 준비하셨다고 한다. 일본인 친구 아야가 배가 불러 도저히 못 먹겠다고 손사래를 치자, “다 먹기 전까진 못 나가!”라며 웃으시는 모습에서 한국의 ‘정’ 문화를 느꼈다.
모로코의 식사 예절도 배울 수 있었다. 모로코도 같이 나눠 먹는 문화가 있어 큰 접시에서 자신의 앞부분만 조심스럽게 먹는 식사 예절을 배웠다. 특히 뒤적거리거나 내 앞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헤집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한국 드라마 광이라는 리나의 “맛있어!”에 우리는 아랍어로 ‘브닌’을 연신 외쳤다.
알 마그리브, 편견이 무너지다!
모로코를 아랍어로 ‘알 마그리브’라 부른다. ‘해가 지는 마지막 땅’이라는 로맨틱한 뜻을 가졌다. 대서양을 바라보며 지는 해는 정말 아름다워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알 마그리브, 해가 지는 모로코의 풍경 (사진=이서현 기자)
내가 경험한 모로코는 내 편견 속 아프리카와 이슬람 국가와는 전혀 달랐다. 히잡은 필수가 아니었고 종교도 자유롭지만 신실하게 믿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 친구들 로사나 아야, 마루와는 여성임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오히려 당당한 커리어우먼처럼 멋있어 보였다. 또한 주입식 교육이 아닌 교수님과의 토론 중심의 대학 문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슬람과 아프리카 문화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사람들은 왠지 모를 여유가 가득하고 항상 흥이 많았다. 어떤 노래를 틀어도 춤을 추고 대화가 끊이질 않는 사람들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럽처럼 정돈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역사나 문화적 가치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은 멋있어 보였다.
단순히 조사를 위해 떠난 여정이었지만, 그 안에서 국적이 제각각인 친구들과 부대끼며 문화교류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됐다. 서로의 배경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은 어떤 공부보다 즐거웠고, 이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교류와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이 생겼다. 또한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잇는 전공생으로서 낯선 문화를 편견 없이 연결하는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스크 하산 탑 공원에서 만난 모로코 아이들 (사진=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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