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총여학생회 폐지 후 생긴 학생·소수자위원회(학소위)는 대학 내 소수자 인권을 대변한다. 하지만, 최근 학내 구성원 사이에서 학소위의 역할에 의문을 품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난 5월 존폐 논의에 휘둘린 것이 대표적 예다. 우리신문은 학소위가 처한 현실의 원인과 그 대안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대학가 인권기구 존폐 위기
탈정치화 분위기가 한몫
최근 대학가의 인권 단체와 기구들이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 지난 4월,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정치적 편향을 이유로 생활자치도서관의 특별자치기구 지위 재인준을 부결한 바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성명에서 ‘내란 수괴’라는 표현을 쓴 게 그 이유였다. 고려대 또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지난 5월 소수자인권위원회와 여학생위원회가 외부 활동에 치중됐다는 이유로 징계를 부여했다. 징계 결과 두 기구를 없애고 새 기구를 만드는 신설합병을 결정했다.
우리학교 학소위 논란 또한 ‘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후보 초청’에 대한 비판 대자보에서 시작됐다. 당시 정경대 신하균(사회학 2023) 학생회장은 “학소위 활동에 인권은 없고 정치적 의사 표현만이 가득하다”며 “이런 활동은 지원 없이 동아리 형태로도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양우혁(응용영어통번역학 2021) 문과대 학생회장은 “학소위의 활동이 학내보단 외부 활동에 집중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결국 일부 학생들의 공감을 사기 어려운 점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 ‘다움’의 기진 운영위원은 “대학 사회 전반에서 페미니즘, 인권, 소수자 권리, 나아가 ‘학생의 권리’ 자체를 이야기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학소위 등 인권 단체의 존재 이유를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소위를 향한 관심 고조
혐오·애정 동시에 증폭되는 모습
논란 이후, 학소위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관심은 커진 상태다. 학소위 하현희(국어국문학 2024) 부위원장은 “이전에는 관심 있는 사람들만 학소위 활동에 관심을 가졌다면 논란 이후에는 에브리타임 중심으로 학소위에 대한 이야기가 뜨겁게 올라오고 학소위를 새로 알게된 학생들도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우호적이지 않은 세력과 강하게 지지하는 세력 모두 강하게 의견을 표현했던 계기였다”며 “혐오와 애정 둘 다 많이 생긴 상황”이라고 현 상황을 짚었다.

▲학소위 존폐 논의 이후 학내 구성원이 학소위의 역할에 의문을 품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학소위가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존립을 위한 서명운동'에 나선 모습 (사진=대학주보DB)
정치권과의 유대나 특정 집단만을 위한 활동 전개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하 부위원장은 “탄핵 시위를 예로 들자면 특정 정당의 행사가 아니라 범국민적 집회였다”며 “정치권과의 유대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실천이었다”고 말했다. 또 “학소위가 추구하는 것은 ‘평등’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가치”라며 “‘특정 정체성 중심이 아니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소수자의 존재를 언급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중앙대 인권네트워크 운영진 김영서 씨는 “소수자 인권을 말하는 건 정치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기에 정치와 분리되려고 할 때 오히려 어떤 것을 해야 될지 모르는 모순적인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남겼다. 연세대 박주현(사회학) 교수는 “학생 사회는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정치권을 때로는 주체적으로 이용해 다양한 의제를 설정 및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탈정치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소수자를 억압하는 흐름과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냉소적인 시각 탈피 위해
인권 의제 폭넓게 다룰수도
전문가들은 학내 구성원의 냉소적인 시각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학소위의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활동 전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들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의제에 집중한다면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매달 다른 시의적절한 이슈를 선정해 활동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인권 의제를 폭넓게 다루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화여대 학소위의 경우 ‘사이버불링’ 피해 소통 창구를 운영하고 특정인에 국한되지 않은 인권 가이드라인 개정 활동을 진행했다.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 또한 작년 동대문구 전세 사기 논란 당시 피해자 단체와 연대해 소수자 범위를 넓혀갔다. 학소위 하 부위원장은 “존폐 논의를 겪은 후 학내 활동을 넓히려고 더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필수 교양으로 젠더와 페미니즘, 반성폭력 교육 등을 제정하는 등의 제안을 한다거나 장애 의제 관련 핫라인 구축, 양심 생리대 사업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목소리 과대 대표 가능성도
학소위 존재가치 여전해
일부 학생들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고, 더 다양한 목소리가 묵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박 교수는 “페미니즘 리부트와 백래시를 거치면서 젠더 문제에 대해 전 사회가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워진 상황과도 비슷하다”며 “학소위같은 단체들이 ‘학생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진단의 근거가 부족하다”고 짚었다.
박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 본인의 더 심한 고통과 피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이 안타깝다”며 “개개인의 ‘고통배틀’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볼 수 있는 장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기 위원은 “학소위가 다루는 인권 및 소수자의 문제는 대학 졸업 이후의 사회에서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공동체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있다면, 그들을 대표할 자치 기구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며 “다양성과 평등을 지향하는 학소위의 존재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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