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회기는 대학가이지만 대학가다운 문화적 접점이 약해진 상황”··· 청년 상인들의 새로운 시도 '회식럽'
#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일대는 우리학교를 비롯해 한국외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인접해 있는 대표적인 대학가 상권이다. 현재 학교 인근의 음식점들은 상권 변화를 체감하고 있으며, 학생들 또한 대학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회기동의 젊은 상인으로 구성된 ‘회식럽(회기 미식 클럽)’은 대학가 상권의 활력을 도모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신문은 회식럽을 만나 회기 상권에서 살아가는 청년 상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회기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화이트캣’의 정혜수 사장은 “과거에 비하면 회기 상권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회기는 대학생 외에도 대학원생, 경희 의료원, 공공기관 손님이 많다”며 “홍릉연구단지가 세종으로 이전하고, 코로나19 이후 회식 문화가 달라지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랜차이즈 가게만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회기가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 같다”며 “주변 지역에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많아지면서 지금은 대학가라는 지리적 메리트만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솔낭구’를 운영해 온 이명근 씨도 비슷한 어려움을 전했다. 이 씨는 “요즘은 전반적으로 불경기”라며 “코로나 이후 매출이 확연히 줄었고, 최근 시행된 민생회복쿠폰이나 회기랑길 행사도 큰 효과를 체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대학 상권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박호연(응용영어통번역학 2024) 씨는 “회기에서는 밥을 먹고 카페를 가면 끝인 경우가 많다”며 “갈 만한 곳이 너무 제한적이라 항상 비슷한 동선으로만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노유빈(경제학 2024) 씨는 “학교 앞은 지나갈 때마다 가게가 바뀌어 있는 느낌”이라며 "친구들과 놀 때는 회기보다 성수나 홍대를 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청년 상인들의 새로운 시도
변화 속에서 등장한 ‘회식럽’
회기를 둘러싼 다양한 변화 속에서, 회기동 내 7명의 젊은 상인들을 주축으로 한 모임 ‘회식럽’은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학교 인근 음식점 ‘녹원’, ‘따께리아 라 비다’, ‘본도시락’, ‘심양’, ‘키친 요로시쿠’가 협력한 회식럽은 지역 식문화를 알리고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결성됐다. ‘따께리아 라 비다’의 김성학 사장은 “처음에는 상인회에서 만나 시작된 친목 모임이었지만, 지역 상권에 대한 비슷한 고민을 나누면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녹원’의 김윤식(경제학 2000) 사무국장은 “약해진 상인 간 네트워크을 다시 형성하고, 작은 프로젝트라도 꾸준히 이어가는 방식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시계방향순) ‘녹원’ 김윤식 사무국장, ‘키친 요로시쿠’ 홍민선 씨, ‘심양’ 지민정 사장, ‘따께리아 라 비다’ 김성학 사장, ‘키친 요로시쿠’ 홍윤선 사장, ‘본도시락’ 최규철 실장, ‘심양’ 박정준 사장. (사진=회식럽 제공)
회식럽의 정기 회의는 매주 목요일 밤 11시, 모든 음식점이 영업을 마친 뒤 진행된다.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총 네 가지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올해 1~6월 진행된 ‘전단지 이벤트’로, 회식럽에 속한 음식점들의 할인 내용이 종합적으로 적힌 전단지 3천 장을 제작해 각 음식점에 부착하며 홍보를 진행했다. 배달 위주로 운영하는 ‘본도시락’은 배달 주문과 함께 전단지를 배포했고, 전단지를 지참하거나 촬영본을 제시한 손님에게는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두 번째는 회기동 상권의 문제와 개선점을 공유하는 정기 모임 ‘물어보살’ 운영이다. 세 번째는 방학 기간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에게 간식 꾸러미를 전달하는 ‘사장님 힘내세요’ 프로젝트로, 자체 제작한 엽서에 회식럽의 취지를 담아 전했다. 마지막으로는 지난달 30일, ‘회기랑길 청춘 야장 놀이터’에서 콜라보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면서 직접 만든 소스를 지역 주민들이 시식해 볼 수 있는 참여형 부스를 열었다.
김 사무국장은 “‘사장님 힘내세요’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를 경쟁 상대로만 인식하던 분위기가 조금씩 완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본도시락'의 최규철 실장은 “여름 방학처럼 가장 힘든 시기에 ‘더운 날 고생 많다’며 건네주신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회상했다. '키친 요로시쿠'의 홍윤선 사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최근 진행한 콜라보 팝업스토어를 꼽았다. 홍 사장은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서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변 상인분들도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특색있는 가게 찾기 힘들어
회기 상권 변화 필요성도
청년 상인들은 회기 상권의 구조가 새로운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 사장은 “특색 있는 가게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며 “대학가라면 개성 있는 상점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손님이 이어지는 흐름이 필요하지만, 그 부분이 예전보다 약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심양'의 박정준 사장은 “사장님들 중 오래되신 분들이 워낙 많아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팝업스토어나 협업 프로그램도 아직 낯선 개념인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학창시절 회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박 사장은 “2000년대 회기는 소위 ‘핫플’이었다”며 “먹는 것과 노는 것이 모두 회기에서 해결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굳이 다른 곳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김 사무국장은 “회기는 대학가이지만 대학가다운 문화적 접점이 약해진 상황”이라며 “상점 간 교류가 줄어든 만큼 젊은 상인들이 들어오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김 사무국장은 “외대 앞처럼 최근 변화가 나타나는 사례도 있는 만큼, 회기도 충분히 변화를 모색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회기 상권 발전하려면
공동의 노력 필요
회식럽은 앞으로의 지역 발전 과정에서 학생과 상인이 함께 역할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과거에는 학교 인근 상점을 학생들이 직접 찾아가 홍보해주는 활동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 비중이 줄었다”며 “과거 경희대에서 운영했던 ‘사회혁신 리빙랩’과 같은 프로그램도 지금은 단절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프로젝트가 다시 활성화되고, 상인이 학생에게 역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상권 변화에 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사장은 “작은 프로젝트라도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상권 전반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한 번의 큰 사업이 아니라, 여러 시도가 누적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상인과 학생, 지역 주민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며 “회식럽도 앞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협력 기반을 넓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회기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회식럽은 청년 상인이 중심이 되어 대학가 상권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시작점에 있어 그 의미가 있다. 지역과 상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이들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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