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연속기획-청년1인가구 ②] “냉장고 속엔 물과 두유만 덩그러니” 1인 가구 식생활, 배달과 포기의 경계에서
<연속기획-청년 1인 가구>
① '이제부터 혼자 살아야 해요'…외로움·불안·밥상의 무게
② “냉장고 속엔 물과 두유만 덩그러니” 1인 가구 식생활, 배달과 포기의 경계에서
▲ 자취방의 좁은 구조, 작은 가전, 비좁은 동선은 자취생에게 ‘요리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지 않아 자연스레 배달·간편식 섭취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 (일러스트=양여진)
자취 2년 차에 접어든 이덕수(미디어학 2020) 씨는 요리를 하지 않아 냉장고에는 물과 두유만 있다고 설명한다. “점심은 학식으로, 저녁은 집 근처에서 사 먹죠.” 그가 말하는 식사 감각은 ‘배불리기’가 아니라, 그저 ‘채우기’에 가깝다.
이 씨는 “처음에는 본가에서 반찬을 챙겨오기도 했는데 먹고 나면 음식물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왔다”며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해 먹는 걸 접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계란 후라이도 안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이덕수 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간한 ‘2024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나혼산족이 겪는 가장 큰 생활상 어려움은 ‘균형 잡힌 식사’로, 응답자 10명 중 4명(42.6%)이 꼽았다. 혼자 먹는 식사는 단순히 ‘외롭다’는 정서를 넘어, 실제 삶의 질과 건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대부분 외식·배달로 끼니 해결
1인분 소비자 겨냥 서비스 등장도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홀로 사는 맹보영(무역학 2022) 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자취 초기에는 직접 장을 보고 요리도 해보았지만, 남는 식재료 처리의 번거로움, 조리·설거지 스트레스,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해 먹는 것과 배달하는 것의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는 판단이 맞물리며 결국 배달을 선택하게 됐다.
“처음엔 요리도 했어요. 그런데 식재료는 남고, 요리하면 설거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귀찮더라고요.” 맹 씨는 혼자 사는 자취생의 식사 루틴이 그렇게 고정됐다고 말했다.
배달 플랫폼 업체들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최소 주문 금액을 없애거나 ‘한 그릇 메뉴’ 카테고리를 도입하는 등, 1인분 소비자를 겨냥한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 소비 트렌드가 아닌, 식사라는 일상 자체가 개인 중심 구조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간과 가전이
허락하지 않는 1인 가구의 요리
하지만 이처럼 배달과 간편식 중심으로 생활이 고정되는 데는 공간 제약이라는 근본 이유도 작용한다.
자취 6개월 차에 접어든 장민서(사회학 2025) 씨는 도마보다도 좁은 조리대 위에서 도마를 덜컹거리며 채소 손질을 한다. 장 씨는 “부엌이 좁아 요리하기가 불편하다”며 “간신히 칼질을 한다”고 말한다.
특히 청년 1인 가구가 주로 거주하는 원룸형은 조리를 상정하지 않은 구조가 많다. 1~2구짜리 화구는 그마저도 냄비 2개를 동시에 올려놓지 못할 만큼 작고, 조리대 없는 싱크대도 흔하다. 이에 더해 수납공간이 부족하게 설계된 부엌은 요리 시도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냉장고 용량도 문제다. 김영서(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 2023) 씨는 성인 여자 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냉장고에 식료품을 쑤셔 넣기에 바쁘다. 김 씨는 “자취방 냉장고는 식료품을 다 넣기에 벅차다”며 “특히 냉동실 사이즈가 너무 작아 냉동식품을 구비해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원룸은 주방과 침실, 옷장의 구분이 없다. 작은 창문 탓에 옷가지와 침구류의 냄새 걱정도 빼놓을 수 없다. 장 씨는 “원룸이다 보니 환기가 잘 안된다”며 “요리를 한 번 하면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처럼 좁은 구조, 작은 가전, 비좁은 동선은 자취생에게 ‘요리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지 않는다. 조리와 설거지를 위한 여유 공간이 없으니, 자연스레 조리를 아예 포기하거나 배달·간편식 섭취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다시 밥을 차리는 삶
실제 삶의 질이 떨어지고 건강에도 영향을 줘서 다시 자취 요리로 회귀하는 1인 가구도 늘고 있다. 배달 음식의 자극적인 맛, 무너진 식사 밸런스에 대한 우려 등도 주된 이유다.
맹보영 씨는 “자취 초기에 배달 음식을 자주 먹다 장 트러블이 심해졌다”고 고백한다. 신유빈(미디어학 2024) 씨 역시 “피부가 뒤집어진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자취 2년 차 김영서 씨는 최근 배달을 줄이고 소박한 자취 요리를 시작했다. “배달 음식을 너무 자주 먹다 보니까 어느 순간 맛이 다 똑같았어요. 너무 기름지고, 먹고 나면 속도 더부룩하고요.” 그는 요즘 밥에 채소와 달걀을 곁들이는 식사를 자주 한다. “밥이 있으면 가능한 한 단백질이나 야채를 꼭 넣으려고 해요. 그렇게라도 밸런스를 맞춰야 덜 미안하죠.”
장민서 씨도 마찬가지다. “조미료 맛이 너무 강하잖아요. 배달 음식은 건강이 나빠지는 느낌이 들어서 마트에서 장을 봐두고 간단히 해 먹어요.” 그는 2주에 한 번은 마트에 들러 채소나 밀키트 등을 사두고, 작게나마 ‘나를 위한 식사’를 차린다.
청년 1인 가구의 식사는 단순한 끼니 해결을 넘어 삶을 유지해 나가는 방식 자체와 맞닿아 있다. 누군가는 배달로, 또 누군가는 작은 냄비와 좁은 부엌에서 밥을 짓는다. 그것이 불편함을 감수한 선택이든, 건강을 위한 회기든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에 대한 감각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끼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을 돌보는 방식’일 수 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1
- 2
- 3
- 4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