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마 대표 교양 강의 ‘빅뱅에서 문명까지’(빅문)는 학생에게 우주와 문명, 존재를 아울러주며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 10년간 ‘빅문’의 뿌리를 다져온 정용석(미생물학) 교수가 올해 정년을 앞두고 있다. 30여 년간 우리학교에 몸담아온 ‘빅문의 아버지’ 정 교수에게, ‘빅문’의 지난 발자취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후마가 지난 2010년, 새롭게 출범하면서 정 교수는 교양학부 총괄 PD를 맡게 됐다. 그 과정에서 초대 학장의 말이 빅문의 시작점이 됐다. “정말로 학생에게 교양이라는 걸 가르치려면, 과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정 교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정 교수는 빅문이 처음부터 순탄하게 자리 잡은 수업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과학으로 교양을 가르치는 기초조차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수업을 준비한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우려와 반대가 있었죠.”
▲ 정용석 교수는 교양이란 ‘무엇이 옳은가’를 스스로 묻고,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틀이라 설명했다. (사진=최단 기자)
빅문, 교양 교육의
전환점을 열다
당시 정 교수가 제안한 ‘전임 교수 중심 수업’은 꽤나 낯설고도 파격적이었다. 당시 많은 교양 강의가 외부 강사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과학은 각 분야 전공자가 아니면 학생의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며 강의진 전원을 전임 교수로 구성하겠다는 기준을 세웠다.
그 기준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정 교수는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생명과학 등 각 분야 전공 교수를 한 명 한 명씩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단편적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과 문명을 과학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짜기 위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역시 좋은 수업을 위한 노력은 예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됐다. 내부에서도 ‘교양 교육 방식’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정 교수는 “과학으로 교양을 가르치는 기초조차 없던 시절”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럼에도 정 교수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교양의 틀을 만들어가기 위한 공동 기획을 이어갔다. 그렇게 빅문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12.6점, 13.1점이었어요.” 정 교수는 초창기 강의평가 점수를 떠올리며 담담히 말했다. 좋은 수업을 위한 최소한의 신뢰 구조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고, 시간이 흐르며 교수진은 점차 자리를 잡았다. 수업 내용도 해마다 발전했다. 그 결과, 지금은 학생의 높은 호응을 얻는 대표 교양 수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강의평가 점수가 90점을 넘을 만큼, 안정된 운영과 깊이 있는 강의 내용이 함께 축적되고 있다.
▲ 빅문 편찬 과정은 인간과 문명을 과학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짜기 위한 여정이었다. 사진은 빅문 교재. (사진=최단 기자)
기술 문명 속
교양의 새로운 과제
정 교수는 빅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조언을 던졌다. 향후 구성에서 기술 문명의 흐름, 특히 AI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강의에는 AI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정 교수는 “AI는 반드시 다뤄야 할 주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2000년 전에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인간을 설명하는 데 핵심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AI, 로봇, 암호화폐 등 이들의 방향이 인간의 자리를 바꾸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존재와 역할이 기술 발전과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는 시대에, ‘빅문’ 역시 이러한 흐름을 포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빅문’이 과거의 우주와 문명, 철학을 조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핵심 쟁점들까지 교양의 언어로 끌어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단지 기술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인간이 누구인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결론적으로 앞으로의 ‘빅문’은 과학과 인문을 넘나들며, 기술 문명의 흐름 위에서 인간과 사회, 윤리의 문제까지 함께 성찰하는 교양의 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 교수의 구상이다. 이는 ‘빅문’이 단지 과거를 통찰하는 교과를 넘어, 미래를 묻는 교양의 실험실이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스스로를 성찰하는 눈
교양에서 시작된다
“교양의 목적은 교양이 아니다.” 정 교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교양을 단지 지식이나 기술의 습득으로 여기는 인식에 선을 그었다.
예술, 기술, 정치, 경제 등 학생이 사회인이 돼 마주할 변화 앞에서 결국 필요한 것은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교양이란 ‘무엇이 옳은가’를 스스로 묻고,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틀이라 설명했다. 삶을 판단하는 도구, 그것이야말로 교양의 본질이라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정 교수는 자기 삶의 품질을 타인의 시선으로만 재단하는 현실에 회의적이었다. “우리는 평생, 자기 평가를 타인에게 맡기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을 성찰하는 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정 교수는 ‘교양’이라고 믿는다. “학생이 세상을 이해하고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그 기준을 마련해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빅문은 그 기준을 함께 묻고, 길을 찾아가는 교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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