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희 교육 혁신 비전 선포식이 진행됐다. 김진상 총장을 비롯해 학생, 교수, 직원 대표자가 교육 혁신 방안을 두고 의견을 공유했다. 다전공 의무화, 교양교육 개편, 수업 혁신 모델 등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적지 않은 변화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변화의 구체적인 방식과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관련 부서를 취재한 결과, 비전 선포식 발표가 내부적으로 충분한 협의가 이뤄진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날 김 총장은 핵심과제로 다전공 의무화와 교양교육 개편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다전공 의무화는 이미 무전공 입학제 도입 이후 불거진 인기학과 쏠림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현재도 경영학과, 미디어학과 등 일부 인기 학과는 전공생조차 수강신청이 어려울 정도로 강의 수요가 포화 상태다. 이러한 현실에서 전공 선택의 문턱을 낮춘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의무화로 생길 수도 있는 수강 불균형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공산이 크다.
인프라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강의실 부족, 강의수 대비 수요 불일치, 그리고 교수진의 물리적 한계는 이미 일부 단과대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다. 이날 비전 선포식에서 학교 측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온라인 강의 확대’를 해법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몇 해 전 코로나 시기에서도 보았듯이 온라인 수업은 수업 질 저하, 상호작용 부재, 학습 몰입도 저하라는 다양한 문제점을 수반하기도 한다. 일방향 콘텐츠 소비에 머무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양적 확대 그 자체만으로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교양교육 개편 역시 충분한 공감대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우리학교 교양교육은 후마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이미 15년 가까이 단과대학 수준의 독립 교양 교육 체계를 구축해 온 상황에서, 개편 논의가 후마와의 긴밀한 논의 없이 진행되고 있다면 이는 구조적 혼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것보다, 기존 체계의 성과와 한계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번 선포식은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모두가 시청할 수 있었던 공개 행사였다. 그만큼 정책 발표 내용은 많은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며, 정책 추진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더욱 커진다. 그러나 그 실질적 실행을 책임져야 할 교육혁신추진단은 아직 출범 시기조차 정해지지 않았고, 구성원 또한 미정이다. 방향성에 버금가는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라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는 구성원이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교육 혁신은 당위로만 실현되지 않는다. ‘비전’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의 방향이어야 하며 그 출발점은 언제나 충분한 공감과 소통이다. 개별 정책이 아니라, 소통의 구조 자체를 혁신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 혁신의 첫걸음일 것이다. 교육과 관련한 대혁신을 이뤄내겠다는 마음과 의도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관련 부서, 구성원과의 긴밀한 논의 없이 발표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그 과정을 밟을 것을 희망한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혁신을 앞당기는 기본 순서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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