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0주년 특집 기획
① 후마의 성취와 남은 과제
2010년, 국내 최초로 교양교육을 단과대 수준으로 독립시킨 파격적 실험의 결과물이 등장했다. 후마니타스칼리지는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계’를 기치로 내걸며, 인문학을 중심에 둔 교양교육으로 대학 교육의 본질을 다시 묻고자 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고, 후마는 설립 15주년을 맞이했다.
당시 교육 철학과 방식은 여전히 시대에 부합하는지, 우리신문은 창간 70주년을 맞아 경희 교육의 한 축인 후마의 성과와 한계를 조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후마의 지난 15년 성취와 남은 과제’를 주제로, 후마 설립위원으로 참여했던 우기동(철학) 미래문명원 교수, 후마 2대 학장 유정완(영어영문학) 교수, 김진해(국어국문학) 후마 부학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실용학문 중심 흐름 속 던진 질문
“개인의 성숙과 공공선 동시 추구”
2010년 9월 17일, 경희대는 국내 고등교육사에 의미 있는 전환점을 찍었다. 후마의 등장은 실용 학문과 취업 중심의 대학 교육 흐름에 비판적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삶의 의미, 윤리적 태도, 공동체의 가치 등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 교육을 실현하고자 한 시도였다.
후마는 자기 성찰과 시민의식 함양을 교육목표로 설정하고, 인문학 기반의 교과과정을 구축했다. 김 부학장은 “전공과 상관없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꿈꿨다”며 “당시 입문 수준에 머물던 교양교육을 심화·확장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시민교육을 설계한 우 교수는 “후마 철학은 개인의 내적 성숙과 공공선 추구라는 두 축이 균형을 이루는 데 있었다”며, “평생 성찰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후마 2대 학장을 역임한 유 교수는 후마 교육을 “경희 정신의 교육적 실현”이라 평가했다. “학원의 민주화, 사상의 민주화, 생활의 민주화”라는 경희대의 교훈은 결국 인간의 품성과 인격에 대한 선언이며, 후마는 이 가치를 교실에서 구현하려는 실험이었다.
교육 방식 변화 목소리 높아져
“전환 설계 교육 필요”
출범 이후 후마는 교양과목 개편과 새로운 교과목 도입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모색해왔다. 대표적인 중핵교과 ‘문명 전개의 지구적 문맥 1·2’를 비롯해, 과학과 인문을 융합한 ‘빅뱅에서 문명까지(빅문)’, 자기주도 학습을 강조한 ‘독립연구’ 과목이 그 결과물이다. 여기에 소프트웨어 기초교육, 대학영어 통합과정 등 실용적 과목도 점진적으로 편성됐다.
2019년에는 대대적인 교과과정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우리가 사는 세계’와 ‘시민교육’을 ‘세계와 시민’으로 통합하고, 글쓰기 과목도 ‘성찰과 표현’, ‘주제연구’로 새롭게 재편했다. 지난해에는 배분이수 체계를 7개 분야에서 5개로 단순화하고 과목명과 이수 구분도 일괄 조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실제 방식은 여전히 출범 당시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우 교수는 교육 방식의 고착화와 교수진의 타성화를 함께 문제 삼았다. “형식만 남고 내용은 정체된 상태”라며, “학생의 문제의식과 삶의 현실에 기반한 ‘전환 설계 교육’이 지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 교수는 후마가 주관하는 ‘사회혁신학기제’를 좋은 예로 들었다. 이는 지방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역에서 학생이 합숙하며 지역 문제를 직접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실천형 프로젝트로, 학습과 경험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 교수는 후마 교육의 목적성이 사라지는 것을 경계했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교육해야 하는데, 지금의 후마 교육은 방향성을 상실한 듯 보인다”며 “각 강의가 후마 교육의 목적과 부합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캠 간 불일치, 절대평가 논란
드러나는 구조적 한계
후마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는 철학이나 방식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현실적인 구조와 운영 면에서도 다양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절대평가 제도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그 사례다. 지난해 서울캠은 교양과목에 절대평가를 전면 도입하고자 했지만, 국제캠은 이에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며 ‘단계적 도입’을 주장해 결국 논의는 결렬됐다.
‘빅문’ 과목의 운영에서도 양 캠퍼스는 다르다. 서울캠은 공통 교재와 플립 러닝 방식의 수업을 운영하고 있는 반면, 국제캠은 교수마다 자율 커리큘럼을 선택해 학생 간 교육 경험의 차이가 크다. 이는 후마가 표방하는 통합적 교양교육의 취지와 어긋난다.
‘세계와 시민’ 과목에 대해서도 실천적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 교수는 “답사나 현장 학습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사회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하는 교육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제연구’ 과목 역시 자율성과 탐구를 강조하나, 실질적인 학문적 성과로 이어지기엔 제약이 많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한 학기 내에 학생이 주제를 정하고 연구 계획을 세워 발표까지 진행하기엔 시간과 시스템 모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교양 필수 및 배분이수 기준의 축소도 문제로 지목된다. 유 교수는 “예전엔 7개 영역 중 5개 이상을 이수해야 했지만, 지금은 3개만 들어도 졸업 요건이 충족된다”며 “이는 교양교육의 필수성과 중요성이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했다.
후마는 현재 크게 세 개의 영역의 교육을 제공한다. 인간의가치탐색, 세계와시민, 성찰과표현, 주제연구, 빅뱅에서문명까지를 포함하는 교양필수, 5개의 분야로 나뉜 배분이수, 그리고 자유이수다. 앞으로 우리신문은 15주년을 맞은 후마가 각 영역별로 시대에 부합하는 교육을 위해 어떤 교육법을 택하는 것이 좋은지, 남은 과제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짚어볼 것이다.
김규연 기자 imgonnadoit@khu.ac.kr
하시언 기자 hse0622@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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