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창간 70주년-나는 주간교수다①] “진실을 기록하라” 대학언론 초석 다진 故이규종 교수, 유족들은 거액 기부로 유지 이어가
창간 70주년
나는 주간교수다① - 이규종 교수(2대 주간교수·정치학)
# 대학의 역사와 구성원의 목소리를 담아 온 대학주보가 70주년을 맞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학생기자의 역할만큼 이들을 묵묵히 지도해 온 주간교수의 고민과 열정은 대학주보를 떠받쳐온 또 하나의 기둥이었다. 우리신문은 역대 주간 교수를 만나 그들이 겪은 대학과 사회의 현실, 덜 다듬어진 학생기자들을 어루만져온 그 시간을 들어보았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학생시절 대학주보를 창간하고 교원으로서는 2대 주간교수를 지낸 고 이규종 교수의 이야기를 전한다. 시리즈는 1학기 동안 총 7명의 주간교수를 만날 예정이다.
“이규종 교수는 ‘확실하고 자상한 분’이다.” 대학주보 13기 안병준(신문방송학 1967) 동문은 故이규종 교수를 이렇게 회상했다.
운연(雲淵) 이규종(정치외교학 1954) 교수는 대학주보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리고 2대, 7대 주간을 지내며 신문방송국(대학주보, 영어신문, 대학의소리방송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열정과 가르침은 여전히 후학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학주보 주간, 경희대 사무처장(지금의 총무관리처와 인사처), 경희학원 상무이사 등 다방면에서 우리 학교 발전을 위해 맹렬히 일했던 그의 삶과 철학을 대학주보 창간 70주년을 맞아 돌아본다.
대학주보 창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이규종의 귀에 솔깃한 이야기가 들렸다. “우리 학교도 종합대 승격을 기념해 대학신문을 창간하려 합니다. 관심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게 와서 얘기하세요.” 훗날 대학주보 창간 후 초대 주간을 지낸 이원우(정치외교학) 교수의 제안이었다. 이 말을 들은 대학생 이규종은 한달음에 달려갔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는 즉시 함께 신문을 만들 동료를 찾아 나섰고, 그렇게 대학주보가 탄생했다.
1955년 5월 12일은 청년 이규종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거대한 윤전기의 ‘윙’하는 굉음과 함께 네 면짜리 창간호가 인쇄되는 순간, 그는 감격했다. 동료들과 어깨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며 신문을 차에 싣고 학교로 달려갔다고 한다.
▲ 이규종(사진) 교수는 대학주보 기자들에게 '도깨비'라는 호칭을 붙이며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사진=이규종 교수 기념문집 '열정의 향기')
엄격하지만
따뜻한 리더
이 교수는 제자를 지도할 때 ‘진실된 사람인가, 성실한 사람인가’를 먼저 살폈다. 이러한 기준을 충족한 학생에게는 학보사 기자로서의 ‘무한한 자유’를 부여했다. 스스로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믿어주는 가르침 말이다. 운연은 엄격하면서도 관대한 지도자였다. 학생 기자들이 기사 마감 후 술을 마시거나 소란을 피우는 것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기자들에게 ‘도깨비’라는 호칭을 붙이며 그들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도깨비란 엉뚱한 노릇도 잘하지만 막상 무슨 일이든 맡기면 어김없이 해내는 이들을 향한 그의 사랑 어린 표현이었다.
화를 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마감 전날이 되도록 보이지 않던 후배 기자가 마감날이 되어서야 원고 뭉치를 내미는 모습에 분노했지만, 두어 번씩 읽어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돈된 문장을 보고 “이런 도깨비 같은 녀석들. 마감 시간에 숨바꼭질 좀 하지 않게 해 다오.”라며 미소 짓곤 했다.
이후, 주간직을 맡은 이 교수는 대학주보의 성장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네 면이었던 지면을 8면으로 증면하고 발행주기를 주 1회에서 주 2회로 늘렸다. 1968년 개최된 세계대학총장회의 서울대회 개막식 사진을 컬러로 싣는 등, 당시 대학신문 최초로 ‘컬러시대’를 열기도 했다. 대학신문 최초로 시도한 것이 이뿐 만은 아니었다. 유신 말기 암울한 시대 속에서 대학주보는 1면에 무기명 칼럼인 ‘과녁’을 매주 게재했다. 시대 상황 때문에 직설적인 비판보다는 은유가 주를 이뤘다. 이 교수는 과녁의 게재를 결정하며, 한편으로는 직을 건 용단을 내린 것이다.
▲ 대학주보는 엉뚱한 노릇도 잘하지만 막상
무슨 일이든 맡기면 어김없이 해내는 ‘도깨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일러스트=이규종 교수 기념문집 '열정의 향기')
철저한 팩트 중심 언론관
진정한 경희사랑의 표현
안 동문은 “교수님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아닌, 철저한 팩트 중심 보도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기사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코멘트를 거듭 확인했던 그의 태도는 언론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보여준다.
대학주보가 대학만이 아닌 경희학원 전체를 다루는 것에 학보사 기자들이 불만을 제기했을 때도, 이 교수는 흔들림 없이 원칙을 지켰다. 이는 진정한 ‘경희사랑’의 표현이었다.
또한 이 교수는 ‘따옴표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이미 60여 년 전에 간파하고 있었다. 따옴표가 현실 자체를 규정하는 힘을 가짐을 지적하며 “취재원의 발언은 열 번, 스무 번 확인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진실을 파악하고 독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한 것이다. 취재원의 표현이 애매할 경우, 스트레이트 기사 속에서도 해설을 덧붙여 독자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직을 넘어
학교 발전을 위해
땀 흘렸던 5년
주간 이외에도 이 교수는 5년 동안 경희대 사무처장직을 맡으며 당시 척박한 환경이었던 캠퍼스 조성 공사를 현장에서 직접 이끌었다. 사무처는 지금의 총무관리처와 인사처가 분리되기 전 부서명칭이다. 이 교수는 모든 직원이 출근한 9시 30분, ‘보다 나은 회의’라고 이름을 붙인 회의에서 직원 업무의 결과를 분석하고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일 점검표를 만들어 각 과의 업무를 체크하고, 제대로 시행이 안 된 부분은 엄하게 꾸지람했다.
점심식사 후엔 학교 공사 현장을 직접 감독했다. 학교이니만큼 면학 분위기를 해칠 공사를 마냥 질질 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사장을 지키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타 부서는 이미 모두 퇴근해 불이 꺼져 있었다고 한다. 저녁은 늘 허탈하고 마음이 공허했다. 낮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더 알찬 강의를 했어야 했는데라는 식의 후회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어려운 시절 학교의 기반을 잡아나갔다. 불철주야로 헌신적으로 일해 크라운관 콘서트홀, 노천극장 테니스 코트 건설, 캠퍼스 전역의 조경 공사 등을 이뤄냈다.
후학들에게 남긴
‘열정의 향기’
이 교수의 정신은 그의 가족을 통해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아내 김인선 여사와 딸 이미경 씨는 학교를 위한 기부를 이어오며 대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김 여사는 지난 2022년 장학금 20억 원을 기부했다. 김 여사가 기부한 장학금은 이 교수의 아호를 따 ‘운연장학금’으로 명명돼 정경대 305호 강의실이 ‘운연’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20억 원은 김 여사가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팔아 마련한 자금이었다. 기부를 결심한 큰 이유는 남편이 평생토록 일궈온 우리학교가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는 교육과 언론의 역할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그의 신념이 세월을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족들은 2024년에도 10억 원을 장학기금으로 추가 기부하기도 했다.
▲ 지난 2022년, 이규종 교수의 아내 김인선 여사가 장학금 20억 원을 기부했다. 김 여사가 기부한 장학금은 이 교수의 아호를 따 ‘운연장학금’으로 명명돼 정경대 305호 강의실이 ‘운연’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강의실 명명식 당시, 주황색 옷을 입고 있는 김 여사(오른쪽)가 운연 강의실 현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대학주보 DB)
운연이 사랑한 경희대
그리고 대학주보
1989년 12월 15일, 1955년 창간호부터 1962년까지의 대학주보를 모아놓은 축쇄판 1권이 발행됐다. 이규종 교수는 축쇄판 1권 발행과 대학주보 1천호 발간을 축하하기 위해 <극명한 시대정신에 입각해 기록된 경희사>라는 글을 쓰며 이렇게 말했다. “대학언론은 그 시대 최고 지성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대명제 속에서 그 길을 걷는 대학신문은 수많은 갈등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여기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은 ‘기자정신’이며, 이에 얼마나 충실했느냐에 따라 대학신문의 길은 좌우됩니다.”
이규종 교수의 이 말처럼, 우리학교 신문방송국의 초석을 다진 그의 유산은 후학들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오늘날 대학 언론과 저널리즘을 돌아볼 때, 그의 원칙과 가르침이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운연이 남긴 열정의 향기는 여전히 가슴 사무치게 베어있음을, 앞으로도 길이 남을 것은 변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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