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시에 생명을 불어넣은 시음악, “공연 관람이 현실도피가 아닌 자각의 역할하길”
【서울】 후마예술축전 세 번째 공연 <시음악 ‘황무지’: 메마른 땅에 예술의 싹을 띄우다>가 지난 7일 청운관에서 열렸다.
T.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The Wasted Land)’를 바탕으로 공연을 구성했다. 김준영(서울대학교 음악박사) 교수와 허창열(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교수, 외부 연주자가 출연했다.
시작은 허 교수의 기본무를 바탕으로 한 ‘덧배기춤’ 독무였다. 덧배기춤이란 부정한 것, 잘못된 것, 좋지 못한 것인 덧난 것을 베어버리고 다음 춤으로 이어가는 춤이다.
▲ 한예종 연희과 허창열 교수의 덧배기춤 독무
공연을 준비할 때 가장 신경 쓴 지점은 소통이었다. 공연의 시작에 앞서, 관객과 ‘산 좋고 물 좋고 어절씨구 좋다’를 함께 외치고 시작했다. ‘얼씨구 허이 좋다‘라는 추임새도 소개하며 관객과 소통하는 춤판을 만들었다. 또한 허 교수는 무릎을 굽히고 펴는 동작을 자주 하며 덧배기춤의 특징을 잘 드러냈다. 높이 뛰어 땅을 향해 힘차게 내딛는 춤사위인 ‘배기사위’도 볼 수 있었다. 어깨와 오금에 순간적으로 힘을 줘 치켜 올리는 ‘으시개’ 또한 볼거리였다.
허 교수는 “이번 공연에서는 독무로 췄지만, 덧배기춤은 군무로 많이 춘다. 학생과 함께 추는 다음 공연인 <얼쑤난타>를 기대 중”이라며 오는 28일 열릴 후마예술축전 공연 중 하나인 <나, 우리! 몸들의 향연!>을 언급했다.
허 교수의 흥겨운 ‘밝은 세계’를 뒤로하고, 김 교수의 <시음악 ‘황무지’> 공연이 이어졌다. 이번 공연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다 선명하게 하고자 기존 <황무지> 곡목을 약간 변경하고 내레이션에도 변화를 줬다. 현대 젊은이의 모습, 쿠팡 화재사건 등 현대 사건·사고를 연상할 수 있게 했다. 김 교수는 “공연 관람 등의 문화활동이 현실에 대한 도피가 아닌 현실 자각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하며 공연의 취지를 강조했다.
공연 순서는 ▲‘죽은 자의 매장’ ▲‘체스놀이’ ▲‘수장’ ▲‘불의 설교’ ▲‘천둥이 한 말’이었다.제목은 T.S. 엘리어트의 시 중 5개의 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죽은 자의 매장’ 시작에 앞서 T.S. 엘리어트의 동명의 시를 읊는 내래이션이 있었다. 뒤이어 김 교수가 자작곡 ‘낮은 목소리’를 연주했다. 죽음조차 숨죽여야 하는 우리 사회의 낮은 곳에 집중해보고자 한 곡이다.
'천둥이 한 말' 장의 공연 장면
‘체스놀이’의 내레이션은 소통이 되지 않는 연인의 대화로 시작됐다. 가야금 연주자 이지혜 씨와 김 교수가 공동 작곡한 동일 제목의 곡이 연주됐다. 소통을 중시하면서도 정작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현대인들의 단상을 표현한 장이다. ‘수장’ 내레이션에서는 세월호 사고 당시 단원고 교사였던 고창석 씨의 이름이 등장했다. 김 교수의 자작곡이 연주되며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 등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불의 설교’에서 김 교수는 내레이션을 통해 우리사회의 재난을 다루고자 했다. 2021년 발생한 쿠팡 화재를 소재로 삼았다. 장구 연주자 윤서경(추계예대 국악과) 씨와 합주했다.
마지막 장인 ‘천둥이 한 말’은 비를 머금은 천둥을 의미한다. 전통음악인 도드리를 연주했다. 도드리는 되돌아든다는 말로, 인간이 재난을 만듦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을 성실히 되풀이하고 있는 인간을 나타내고자 선택했다. 인간이 망친 사회를 회복할 힘도 우리 인간이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정혜지(자율전공학 2020) 씨는 “우리나라 전통춤과 전통음악을 학교에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며 “후마예술축전이 예술과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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