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희
교수·관광학
연일 살인적인 폭염이 이어진다. 평생 겪은 더위와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초등학생 시절, 한반도는 온대 기후대에 있다고 배웠는데 여타의 지식과 마찬가지로 세월 앞에 더 이상 참이 아닌 게 됐다. 이쯤 되면 한국 기후를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기후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일까?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왜 이렇게 큰 변화가 온 것일까?
기상청에 따르면, 전국 기준 올해 예측 폭염 일수는 23.5일, 열대야 일수는 23.6일이다. 전국 기준 현재, 하루 평균기온 20도 이상이 유지되는 기상학적 여름은 6월 중순에 시작해 97일간이라고 한다. 이는 365일 중 26% 비율로, 107일인 기상학적 겨울(하루 평균기온 5도 미만이 유지되는 기간)보다는 짧다.
그러나 기상청 기후정보 포털에 있는 ‘기후변화 상황지도’를 보면,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된다면(이를 ‘고탄소 시나리오’라 한다) 30년 후인 2054년에는 폭염 일수가 37.6일로 늘고, 열대야 일수도 32일로 늘어난다. 2074년에는 각각 73일과 63일로, 올해보다 3배나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이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21세기 후반에는 한해 절반가량이(46.3%) 여름이다. 겨울은 불과 40일, 약 10%다.
이렇듯 암울한 예측이 단순 시나리오가 아닌, 이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 불길함과 불쾌함이 견딜 수 없는 무더위를 참는 것보다 우울하다.
물론 ‘저탄소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온실가스를 서서히 감축해 2070년에 탄소 중립에 이른다면, 한반도의 겨울은 적어도 한 달은 유지될 것이다. 탄소 중립은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증가를 막기 위해 인간 활동으로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을 높여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탄소 중립을 위해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적 책임이어야 한다. 우리는 코로나 동안 인도와 중국, 대한민국 등 대기오염이 심각한 국가의 공기가 일시적으로 맑아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인간의 활동 제약이 역설적으로 자연에 쉼과 회복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 요즘 젊은 관광시민들 사이에서 도시에서의 지친 일상을 숲속에서 치유하는 ‘숲캉스’가 유행이다. (사진=픽사베이)
바뀐 것은 기후지형만이 아니다. 한국 관광산업 지형도 이전과 매우 다르다.
대형 OTA (Online Travel Agency) 등장과 저가 항공사 가격경쟁으로 단돈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일본행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됐다. 대형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결국 이는 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실제로 유럽환경청 EEA에 따르면, 승객 한 명이 1km를 이동했을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은 비행기 285g, 버스 68g, 기차 14g이다. 항공기는 기차에 비해 무려 20배가 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러한 상황이 열대야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를 잠에 못 들게 만든다.
하지만 최근,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장거리 여행을 향한 갈망과 세계 곳곳을 누비고 싶은 욕구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7시간 이상 비행을 요구하는 장거리 해외 관광 욕구가 ‘요노(You Need Only One)’의 등장으로 소비 트렌드 뿐만 아니라 관광 행동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발표한 문화관광연구원 트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를 중심으로 로컬힙(지역 만의 특징이 담긴 지역 문화) 유행, 어반 힐링(도시에서의 힐링), 스테이케이션(휴가를 가까운 곳에서 보내는 사회 현상), 니어케이션(근거리여행)이 유행하고 있다.
또한, 생활 밀착형 관광 증가, 관광과 여행의 일상화, 관광과 일상의 탈경계화 등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주변에 있지만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곳에서의 독특한 매력을 찾고자 하는 욕구 또한 국내여행의 주요 동기가 되고 있다.
이에 더해 MZ 세대 중심으로 확산한 소확행 소비 트렌드에 맞물려 관광 시민은 일상으로 스며든 관광과 여행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고자 한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가 관광행위의 양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요즘 K-관광시민은 사회적 이슈를 향한 관심과 윤리의식 또한 높다. ESG와 지속가능성, 노동과 환경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니, 앞날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평범했던 공간을 향한 관심이 늘고, 기후변화로 더 팍팍해진 도시에서의 지친 일상을 숲속에서 치유하고, 시골 마을에서 아날로그적 정서를 얻는 것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한다.
이런 현상이 확산한다면 탄소 중립 목표 도달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안도감과 자신감에 오늘 밤엔 에어컨을 끄고 잠을 청해본다. 곧 다가올 가을바람에 대한 기대와 함께 왠지 모를 낙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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