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 특히 공간 시뮬레이션(geosimulation)이라는 학문을 전공으로 선택한 계기는 게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상당히 좋아했다. 특히, 트랜스포트 타이쿤(Transport Tycoon), 심시티(SimCity)를 가장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당시 또래 친구들이 열광하던 스타크래프트나 포트리스가 아닌, 시뮬레이션 기반 도시 건설 부류 게임을 상당히 좋아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취향은 현 연구와 밀접하다.
초등학교 4학년, 집에 데스크탑이 처음 생겼다. 그러고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게임은 ‘심시티 2000’ 시리즈였다. 도시계획가·시장이 돼 공업지대, 상업지대, 주거지대 등을 구획하고 도시를 설계하는 게임이었는데, 당시 게임상에서 도시를 지금의 세종시와 같이 바둑판 구조로 구성했다. 설계한 대로 도시가 개발되고,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즐거워했다.
이후 몇 년이 지나, 1999년에 심즈(Sims)라는 게임이 발매됐다. 심즈는 심시티처럼 도시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다. 즉, 도시 안에 살고 있는 사람과 사람 간 관계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러한 게임을 할 때까지만 해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구하고 교수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더욱 놀랍게도, 현재 주된 방법론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심즈에서 모토로 삼았던 것과 동일하다. 바로 ‘에이전트 기반 모델(agent-based model)’이다.
▲ 심즈는 도시 안에 살고 있는 사람과 사람 간 관계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해당 게임의 모토인 에이전트 기반 모델은 현재 주된 방법론으로 활용되고 있다. (출처=pixabay)
에이전트 기반 모델은 행위자 기반 모델이라고도 불린다. 모델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가 에이전트 혹은 행위자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기반 모델에서의 에이전트는 사람, 동물과 같이 행위가 있는 대상이다. 이러한 개별 에이전트 특징(나이, 성별 등), 행동 규칙, 개별 에이전트 간 상호작용, 개별 에이전트와 환경 간 상호작용을 정의함으로써 모델이 구성된다.
이렇게 구축한 모델은 도시 발전, 질병 확산과 같은 다양한 지리적 현상 이해, 현상 해석, 미래 예측 등의 목적을 위해 활용한다. 특히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정책적 시나리오 분석을 위해 널리 활용하고 있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에이전트 기반 모델을 박사학위 논문의 주된 방법론으로 활용했다. 태국에서 널리 확산하고 있는 감염병 중 하나인 뎅기열(Dengue Fever)의 시공간 확산모델을 구축했다. 특히 뎅기열 확산 시뮬레이션 결과 검증을 위한 이론적 틀을 제안한 것이 박사학위 논문 내용이다.
현재는 이러한 방법론을 활용해 의료시설, 도심 녹지와 같은 도시 내 인프라 시설 접근성을 측정하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사람들이 도시 인프라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접근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정책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지리학과 대학원생과 함께 대한지리학회지에 출판한 연구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이슈 중 하나는 바로 저출생 및 소아 의료 수요 감소로 인한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란이다. 환자가 진찰받기 위해 병원 문이 열리기 전부터 병원문 앞에서 대기하는 오픈런을 한다. 병원에 들어가도 최소 30분 이상 기다리거나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헤맨다.
▲ 대한지리학회지에 출판된 연구 내용으로, 환자가 집으로부터 병원으로 이동하고, 병원에 가서 대기하거나 다른 병원을 찾아 헤매는 것을 모델로 구축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강전영 교수 제공)
진료 대란은 지역별로 인구 및 의료시설이 불균등해 지역적인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기존에는 이러한 진료시설의 접근성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행정구역(읍면동/시군구) 단위로 해당 행정구역 내의 인구수 대비 병원 수를 계산했다. 또는 행정구역 중심점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거리를 계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기존 방식으로 의료 불균형을 분석하게 된다면 환자가 대기하거나, 대기하고 있던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게 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반영할 수 없다. 에이전트 기반 모델이 이때 유용하다. 이러한 현상을 동적인(dynamic) 프로세스로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종종 면담해보면 앞으로 어떤 분야를 공부해야 할지, 어떠한 진로를 선택해야 할지 참 고민이 많다. 그럴 때마다 ‘그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필자처럼 어렸을 때 즐겨 했던 게임을 토대로 연구를 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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