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화(스포츠지도학 2026) 선수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종합마술 역대 최연소 메달리스트가 됐다. 말과 함께 국가대표의 꿈을 이뤄낸 이 선수를 만나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의 과정과 선수로서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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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승마 종합마술 대표팀 선수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이동화 선수. (사진=이동화 선수 제공)
말과 함께 달려온
국가대표의 길
이동화(스포츠지도학 2026) 선수와 승마의 첫 만남은 우연에 가까웠다. 12살 무렵 취미로 승마를 즐기던 부모님을 따라 승마장을 찾은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취미로 타자는 생각이었지만 타다 보니 재능도 보이고 이 길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부터 전문적인 훈련을 한 이 선수는 이후 회장배 전국승마대회와 전국 종합마술 선수권대회 등 여러 전국대회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하며 승마에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전문적으로 배우자마자 대회에서 입상하기 시작하고 입상했을 때의 희열감으로 승마라는 길을 선택해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수차례 낙마로 어깨가 탈골되고 쇄골이 부러지는 부상도 있었다. 그때마다 힘이 된 것은 부모님이었다. 특히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정점은 찍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말은 이 선수가 다시 말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함께 경기를 뛰는 말을 ‘가족’이라고 표현한 이 선수는 “시합에서 잘하면 당근도 주고 못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말과 같이 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메달보다 값진 순간
아시안게임이 남긴 것
이 선수는 지난해 18살에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됐지만 국가대표 선발에는 4점이 부족했다. 이후 아시안게임 출전 자격(MER)을 갖추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프랑스에서 훈련하며 말과 호흡을 맞췄다. 올해 3월에는 이탈리아 CCI2*-L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고 5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최종 선발됐다. 6~7월에는 홀로 프랑스에 머물며 훈련을 이어갔다. 이 선수에게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인생에서 가장 큰 경기’였다.
이 선수가 출전한 ‘종합마술’ 종목은 3일간 진행되는 마장마술과 크로스컨트리, 장애물 경기 성적을 합산해 순위를 가린다. 이 선수가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은 자연 지형을 달리며 다양한 장애물을 넘어 제한 시간 안에 완주하는 크로스컨트리다. 반면 정해진 동작의 정확성과 표현력을 평가받는 마장마술은 가장 어려운 종목이었다. 이 선수는 “마장마술은 예술적인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데 저에게 어려운 종목 같다”라며 웃어 보였다.
이 선수는 첫날 마장마술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분위기가 뒤집힌 것은 둘째 날 크로스컨트리였다. 출발 직전 스타트 박스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순간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선수는 전날 태풍으로 인해 많은 비가 내려 쉽지 않은 코스에서도 감점 없이 경기를 마쳤다. 첫날의 부진을 만회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이 선수는 “비가 많이 와서 감점 없이 들어오는 게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무감점으로 피니시 라인을 넘는 순간 손을 흔들며 세리머니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종합마술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선수는 “극적으로 둘째 날 순위를 역전해 동메달을 따다 보니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며 “이번에 종합마술 역대 최연소 메달을 기록해 더욱 값진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학교 학생이자 국가대표
더 높은 곳을 향해
국가대표와 대학생으로서 일상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에 있을 때는 오전에 승마장에서 훈련한 뒤 오후에는 학교로 향하지만 해외 훈련과 대회로 학교를 비우는 날도 많다.
종합마술은 국제대회 참가에 필요한 자격인 MER(Minimum Eligibility Requirements)을 국내에서 획득할 수 없어 유럽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이 선수 역시 아시안게임을 준비를 위해 작년 8월부터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훈련을 이어갔다.
새내기로서 평범한 대학생활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특히 동기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3~4월에도 해외 훈련과 대회로 학교를 자주 비워야 했다. 그는 “초반에 친구들이랑 많이 친해져야 하는데 3, 4월에 학교를 못 나오다 보니까 조금 겉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동선수 출신 교수들이 많은 체육대학의 환경은 선수 생활에 힘이 됐다. 이 선수는 “체육대학 교수님들도 과거에 모두 운동선수셨다 보니 선수로서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며 “이를 되새기면서 시합장에서 멘탈 관리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동메달로 하나의 목표를 이뤘지만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 선수는 당분간 국내 종합마술 대회에 출전하며 기량을 이어갈 계획이다. 다음 목표는 4년 뒤 카타르 아시안게임이다. “한국에서 종합마술 대회를 몇 번 더 나가고 2030 카타르 아시안게임까지 나가려고 한다”며 “그때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12살 부모님을 따라 처음 말에 오른 소년은 어느덧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 시상대에 올랐다. 동메달을 목에 건 지금도 이 선수는 다시 말 위에서 다음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4년 뒤 카타르에서 한층 더 성장한 이동화 선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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