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중학생 사촌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깜짝 놀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남편에게 피살됐다는 것이다. 동생의 말은 질문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하는 말투였다.
<암살자들>을 직접 보고 나니 몇몇 장면이 관객에게 특정 인물을 배후로 의심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직접적인 지목 여부에만 있지 않았다. 허술한 대통령 경호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범행의 길을 열어준 것처럼, 방탄 연설대 장치는 누군가 총격을 미리 알고 준비한 것처럼 보였다. 두 장면이 하나의 이야기 안에 놓이면서 누군가 공격이 가능하도록 돕는 동시에 대통령의 안전은 미리 확보해뒀다는 추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역사 영화에서 상상력은 기록이 남기지 않은 이야기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기록에 남은 사실만으론 인물의 감정을 모두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의 배후를 짐작하는 장면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작품안에서 둘을 구분할 단서가 충분하지 않다면, 그 단서로 내린 판단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동생의 말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도 비슷하다. 동생은 그 장면을 사실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직 그 시대를 자세히 배우지 않은 학생에게는 영화 속 장면이 수업에서 접하는 설명보다 더 선명하게 남을 수 있다. 작품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넓혀주지만 오염된 사실을 전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생인 우리도 다르지 않다. 역사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렀지만, 영화에 나온 내용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누가 묻는다면 자신있게 답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영화를 봤다는 것과 그 사건을 안다는 것은 다르다. 그 차이를 잊은 채 화면에서 본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나의 역사관을 형성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교육에서의 역사 교육도 이러한 판단의 과정을 함께 다뤘으면 한다. 영화 속 장면을 기록과 비교하고, 서로 다른 설명 중 무엇을 믿을 수 있을지 따져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다른 역사 이야기를 접할 때도 스스로 근거를 따져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역사 교육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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