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세시봉] 우리의 적
6·3 지방선거 중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들이 참정권을 침해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부 유권자들은 긴 시간을 기다리다 지쳐 발길을 돌렸고, 개표방송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투표가 이어지는 황당한 장면이 연출됐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투표의 공정성이 훼손된 순간이었다.
선거관리 부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코로나 확진자들의 투표용지를 정식 투표함이 아닌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아 운반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선관위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불과 몇 년 만에 또다시 유권자를 기만한 셈이다.
유권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터무니없는 선관위의 해명이었다. 예상보다 투표율이 높았다는 설명이었다. 투표 참여를 독려해야 할 기관이 정작 투표를 위한 기본적인 준비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투표용지 수량 확보는 선거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행정 착오로 치부할 수 없다.
선거 중 벌어지는 정쟁과 토론, 때로는 거친 말싸움마저도 결국 민주주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판단하며, 다시 선거에서 책임을 묻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선관위는 이제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청년 유권자들 사이에서 투표에 대한 불신과 미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청년층의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은 사회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이 61%로 지난 지방선거보다 10.1%포인트 오른 고무적인 상황에서 선관위의 부실은 청년들의 투표 참여 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논산시 제1선거구에서는 단 1표 차이로 선거 결과가 뒤바뀌었다. 민주주의에서 한 표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증명하듯 국민들은 그 한 표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투쟁해왔으며, 그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초석이 됐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선관위는 가장 큰 우리의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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