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국지』의 저자인 하응백(국어국문학 1979) 작가는 “우리 사회는 실체있고 포용력을 가진 국가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민영 기자)
중국에 『삼국지』가 있다면, 이제 한국에는『사국지』가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인 하응백(국어국문학 1979) 동문이 40여 년의 준비 끝에 완성한 대하역사소설『사국지』는 단순한 역사 재구성을 넘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국가의 기원을 묻는다.
집필의 시작은 1986년 강원도 철원 최전방 벙커에서였다. 당시 군 복무 중이던 하 작가는 밤마다 『삼국사기』를 한문으로 필사하며 언젠가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한 대하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하 작가는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같은 장대한 서사를 우리 역사를 통해 구현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평론가로서 30여 년을 보낸 그는 2019년 자전소설 『남중』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한 뒤, ‘공동체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나아갔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삼국’ 프레임을 깨고 가야를 포함한 ‘사국’ 체제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하 작가는 신라·백제·고구려뿐 아니라 가야를 삼국통합의 핵심 주역으로 바라봤다. 특히 신라가 가야의 기반을 흡수하고 이를 국가 시스템 속에 융합한 것이 삼국통일의 ‘결정적 동력’이었다고 해석한다. 하 작가는 “신라는 가야의 철기 문명과 인프라를 적극 포용했고, 그 힘으로 삼국통일을 넘어 당나라 세력까지 몰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시각은 현대의 ‘국가정체성’으로 이어졌다. 저출생과 이주민 증가로 인구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하작가는 기존의 ‘민족’ 개념보다 ‘국가’ 개념이 공동체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국지』가 그리는 삼국통일은 단순 정복 전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집단을 융합해 하나의 국가 체계를 구축한 국가 건설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국지』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압도적인 사실성이다. 하 작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 중국의 『신당서』·『구당서』, 일본의 『일본서기』까지 방대한 사료를 섭렵했다. 전국의 유적지를 수차례 답사했고, 금석문과 지형 연구를 통해 지형적 세밀함까지 놓치지 않았다. 실제로 하 작가의 작업실에는 수백 편의 논문과 직접 정리한 연표, 지도가 빼곡했다. 그는 “소설 속 사실의 비중이 95%”라며 “인물 연보를 모두 짜놓고 사건을 넣었다”고 밝혔다.
작품 곳곳의 각주와 시대 설명도 이러한 고증으로 이어졌다. 『사국지』는 일반적인 역사소설과 달리 시대 상황과 지리, 연대를 세세히 설명한다. 독자가 당시 상황과 공간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미질부’를 영덕으로, ‘실직’을 삼척으로 함께 표기해 낯선 삼국시대의 지리를 현재와 연결했다. 하 작가는 “마치 드론을 띄워 공중에서 내려다보듯 객관적인 시점을 유지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총 5권으로 구성된 『사국지』는 시대별 주요 흐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1·2권은 이사부 장군을 중심으로 우산국 정벌과 한강 유역 진출까지 신라의 성장기를 담았다. 3·4권에서는 김춘추·김유신·문무왕을 중심으로 백제 멸망과 나당전쟁, 삼한일통의 과정을 다룬다. 마지막 5권은 5세기 백제 한성 함락을 다룬 권외편으로, 삼국 간 원한의 갈등의 시작을 설명하는 프리퀄 역할을 한다.
『사국지』는 1,500년 전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길을 묻는다. 하 작가는 “우리 사회는 실체있고 포용력을 가진 국가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라가 가야·백제·고구려 유민을 품어 하나의 국가를 구축했듯, 오늘날의 우리도 다양한 구성원을 포용하는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사국지』는 익숙했던 ‘삼국통일’의 서사를 넘어, 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하나의 국가가 되었는지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거대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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