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차에 걸친 ‘청년극우 연속기획’을 마무리한다. 1회차 「‘밈’처럼 소비되는 혐오, 내 안의 극우를 깨우다」를 발행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특히 우리신문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시선이 많았다.
각오하고 시작한 연속기획이지만 예상했던 것 이상의 반응이었다. 우리신문에서 했던 설문조사에서 ‘극우’ 또는 ‘극우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문항에 ‘특정 정당·정치 세력’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던 만큼,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기획 의도는 그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정치적 논의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타자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와 배척을 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정서에 대해 취재하고 싶었다.
이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교수들의 공통적인 지적은 우리가 예전만큼 대화하고 토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선 상식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민감한 사회 문제에 대해 터놓고 토론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는 ‘예’보단 ‘아니오’에 가깝다.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그 대화가 대인관계를 해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먼저 생긴다. 이러한 사회적 양상이 이어지면서 상대의 생각을 듣지 않고 내 생각을 밝히는 것도 꺼리는 사회가 됐다.
우리신문 설문조사 응답자의 65.3%는 일상 언어와 온라인 문화, 청년 세대의 정서 속에서 혐오와 차별적 언어 사용이 가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에 동의했다. 극단적인 정서로부터 나오는 혐오 표현은 점점 정도가 심해져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직접적으로 혐오 표현을 들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 피로감이 쌓인다.
일상에서 범위를 넓혀보면, 배척하는 태도와 타자 혐오의 정도가 심각해질수록 민주주의는 불안해진다. 극우 정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어렵게 만들어 낸 합의에 균열을 내고 있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을 무너뜨린다.
합의 없는 정치권력이 탄생할 수 있고, 그에 저항하려고 해도 손쉽게 제압당할 수 있다. 일상에선 시민들 사이에서 여러 갈등이 심화되고, 이는 얼마든지 극단적인 폭력 사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진짜 큰일이 나기 전에,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합의할 수 있는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당장 대학생들에게 어제와 다르게 오늘부턴 활발하게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연대 의식을 마음속에 지니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학을 포함한 교육계부터라도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절실하다.
3개월 간 취재하며 우리는 대화와 토론을 두려워하는 것 이상으로 연대의 상실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혐오가 확산되고 타자를 적으로 보게 된 이유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지만 존중을 전제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듣는 과정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타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나’와 ‘우리’를 위해, 이제라도 대화하고 뭉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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