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세종대왕은 사실 '한글'을 모른다고? | [한글날 특집]
세종대왕은 사실 '한글'을 모른다고? | [한글날 특집]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로부터 470년 뒤 주시경 선생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일제가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던 시대,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받은 조선어학회 학자들은 고문과 투옥 속에서도 『조선말 큰사전』을 완성하며 민족의 언어를 지켜냈습니다. 한글날, 세종대왕의 위대한 뜻과 함께 이들의 숭고한 정신 또한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기획 홍지원 | hziione@khu.ac.kr
진행 김다희 / 출연 임찬우 김슬옹 / 구성 VOU
[영상 전문]
10월 9일 한글날. '한글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 바로 세종대왕이죠.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 세종대왕님께 “한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여쭤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
[행인 / 제2기숙사 경비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문자라고 생각하시겠죠"
여러분도 비슷하게 생각하셨나요? 하지만 틀렸습니다. 아마 "한글이 무엇이냐..?"라고 반문하셨을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581년 전, 세종대왕은 한자를 몰라 어려움을 겪는 백성들을 헤아려 '백성을 가르치 는 바른 소리‘라는 '훈민정음‘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우리가 익숙히 쓰는 '한글'이라는 말조차 없었죠. '한글'이라는 이름은 훈민정음이 세상에 나온 지 무려 470년이나 지난 뒤,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지어주신 겁니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주시경 선생. 어려운 집안 환경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그는, 1896년 서재필 선생을 만나며 운명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 창간에 참여하며, 주시경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습니다. "언어가 망하면 민족이 망한다." 이 신념으로 주시경 선생은 한글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배재학당에서 헐버트 선생과 학술 교류를 하며 띄어쓰기를 도입해 한글의 가독성을 혁신했고, 1906년 최초의 한글 음성학 연구 서 『말의 소리』를 발표합니다. 1908년에는 『국어문전음학』을 통해 한글 문법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며 우리말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같은 해, 주시경 선생은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하며 본격적으로 우리말을 지키는 활동에 나섭니다. 하지만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조선의 '국어'가 '일본어'로 바뀌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더 이상 '국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우리말을 부를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주시경 선생이 탄생시킨 이름이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의 '한글'이었습니다.
일본은 '민족 말살 정책'을 펼치면서 우리 민족의 말을 없애려 했습니다. 학교에서 조선어를 쓰면 벌받기도 했죠. 그렇게 절망적인 시대였지만, 주시경 선생의 뜻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8년 뒤, 제자들이 다시 모여 조선어연구회를 만들며 스승의 정신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은 훈민정음 창제 480주년을 기념해 특별한 날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1926년 만들어진 '가갸 날'입니다.
한글을 배울 때 '가갸거겨'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죠.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글날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잡지 『한글』을 창간했는데 이 잡지가 널리 퍼지면서 주시경이 만든 '한글'이라는 단어가 우리말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임찬우 과장 / 한글학회]
"여기 창간호 같은 경우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던 책들이거든요. 여기 창간호라고 쓰여있잖아요. 이건 영인본이라고 몇 권씩 합쳐놓은 건데 보시면 진짜 옛날 책이거든요. 1927년 2월에 창간호가 발간되었다고 해요. 이때 자료들을 다 엮어놓은 거예요."
"지금으로 생각하면 자투리 코너, 광고, 그리고 학회 소식도 실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학회에서 지명총람 같은 식으로 각 지방마다 어떤 고유한 말을 쓰는지 조사하기 위해 '지방별로 말을 모읍시다'라는 말을 싣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당시 학회의 가장 중요한 책이었죠."
이어 1931년에는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바꾸고 한글 표준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한글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궁극적으로 사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죠.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전은 쉽게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말을 지키려 하는 조선어학회는 일본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무렵, 함흥 영생여고 학생 박영하의 일기장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께 혼났다'는 기록을 일본 경찰이 문제 삼은 겁니다. 여기서 말한 '국어'는 우리말이었지만, 경찰은 일본어로 오해했고, 결국 학생을 혼낸 교사를 색출하기 시작했죠.
그 교사는 바로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위원 정태진이었습니다. 그는 곧 체포됐고, 사전 편찬 작업은 '독립운동'으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조선어학회 소속 학자 33명이 모두 검거되었고, 그들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사전 편찬을 위해 수년간 모아온 원고까지 압수되면서,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조선어학회 학자들은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출소 이틀 만에 사전 편 찬 작업을 재개했지만, 일제에 압수당했던 원고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서울역 창고에서 무려 26,500여 장의 원고가 재판 증거물로 보관돼 있다가 기적처럼 발견된 겁니다. 그리고 1947년 한글날, 드디어 『조선말 큰사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한국어 대사전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그리고 오늘의 표준어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김슬옹 원장 / 국어문화원]
"세종대왕이 8명의 학자와 함께 펴낸 책이 훈민정음해례본인데 이것을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꼭 같이 한 번 읽어봐야 하겠고요. 또 하나는 한글날의 정신, 뿌리가 담겨있는 '한글 가온길'이라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2013년에 조성한 길인데요. 경복궁에서 한글을 창제, 반포했죠. 그 앞에는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왕 동상이 있고요. 또 그 옆에 조선어학회 지금의 한글학회가 있고 그 일대에 한글이 주류 문자가 되어온 꿈과 역사를 담은 위대한 길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여기 한글 가온길을 가족과 함께, 벗과 함께 걸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주시경 선생은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 가치를 세상에 드러냈고, 조선어학회 학자들은 목숨 걸고 일제의 탄압 속에서 우리말을 지켜냈습니다.
한글날, 세종대왕의 위대한 뜻과 함께 이들의 숭고한 정신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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