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고거래를 위해 당근마켓 앱을 켰다가 흥미로운 걸 봤다. 검은 두건을 쓴 우스꽝스러운 도둑을 프로필 사진으로 한 게시자가 ‘경도 할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이, 성별 상관없이 동네 이웃을 모집하고 있었다. 모임의 목적은 다름 아닌 ‘경찰과 도둑’이라는 추억의 놀이를 같이 하기 위함이었다.
이 글을 보고 어린 시절 집 앞 놀이터에 모여 친구들과 함께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곤 했던 것이 생각났다. 경찰과 도둑으로 나뉘어져 도둑은 경찰을 피해 도망다니고, 경찰은 그런 도둑을 잡아 감옥에 넣는 술래잡기였다. 도둑 역할을 맡아 경찰 몰래 감옥에 잡혀 있는 다른 도둑들을 풀어줄 때의 짜릿함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기억을 나만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니었던 듯, 당근마켓 게시글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무려 894명이나 됐다. 심지어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당근 경도 모임’은 전국적으로 유행하며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검색창에 ‘경도’를 검색하면 수많은 모집 게시글이 나오며, 개중에는 2000명에 달하는 멤버가 모인 모집 채팅방도 있다.
사람들이 이토록 당근 경도 모임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에 있을까. 우리는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와 연결 될 수 있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 나를 잘 아는 누군가와의 관계 유지는 어렵다. 가까운 만큼 더 조심스럽고, 어쩔 때는 부담스럽다. 그래서 때로는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당근 경도 모임은 이례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깊은 유대나 지속적인 친분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인간관계 유지에 피로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어쩌면 당근 경도 모임은 사람과의 관계 유지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완전한 고립은 원하지 않는 청년 세대가 택한 하나의 선택지일지도 모른다. 깊지 않아도 괜찮고, 오래 이어지지 않아도 되는 만남. 경찰과 도둑이라는 놀이를 매개로 한 이 ‘느슨한 연대’는 오늘날 청년들이 관계를 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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