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르포] '몰래산타 프로젝트', 회기동에 찾아온 작은 크리스마스의 기적
“진짜 산타 할아버지예요?” 크리스마스이브였던 지난 24일, 회기동 골목에 빨간 옷을 입은 특별한 산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타를 발견한 아이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낯선 모습에 어름 뒤로 숨는 아이, 한참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선물을 받아 든 순간, 아이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미소가 번졌다.
연말을 맞아 사회적 나눔과 소통을 실천하고자 미래문명원 글로벌봉사팀 주도로 ‘경희 몰래산타’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몰래산타 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졌으나, 이후 코로나의 여파로 중단됐다. 재작년 비대면 방식으로 한 차례 재개된 뒤, 올해는 8년 만에 대면 활동으로 돌아왔다. 글로벌봉사팀 박유진 담당은 “코로나와 내부 일정으로 중단됐던 프로젝트를 올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핸드벨 계이름 맞추기 퀴즈에 어린이들이 정답을 맞히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사진=박류빈 기자)
이번 활동에는 6명의 재학생이 참여했다. 처음엔 서로 어색해하던 이들은 선물 포장과 리허설을 함께하며 금세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과 어르신에게 드릴 라면, 김, 햇반 등의 음식을 챙겼다. 헤어드라이어 등 전자제품으로 구성된 생필품 상자도 하나하나 정성껏 포장했다. 낯을 가리던 학생들도 산타 옷을 입자 부끄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눈사람 비누 만들기 시간에서 아이들이 집중하며 비누를 만들고 있다. (사진=박류빈 기자)
미래문명원 김원수 원장은 “가장 따뜻해야 할 연말에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이웃들과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뜻깊은 기회”라며 학생들을 독려했다.
회기동에 찾아온 따뜻한
크리스마스의 기적
학생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해피아트지역아동센터와 이문꿈지역아동센터를 찾았다. 아이들은 산타 복장을 한 학생들을 둘러싸며 “어디서 오셨어요?”, “선물 주는 거예요?”라며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핸드벨 캐럴 연주였다. 각자 다른 계이름의 핸드벨을 들고 화면 속 박자에 맞춰 연주를 이어갔다. 처음엔 쭈뼛거리던 아이들도 이내 흥미를 느끼며 박자를 놓치면 “으악!”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첫 번째 프로그램인 핸드벨 캐럴 연주에서 아이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원희재 기자)
이어진 눈사람 비누 만들기 시간에는 아이들과 학생들이 한 테이블에 둥그렇게 앉아 집중했다. 입술까지 오므린 채 비누를 만들던 아이들은 학생들의 칭찬에 “선생님 것이 더 멋져요”라며 마음을 주고받았다.
약 3시간의 활동 끝에 산타 할아버지가 직접 선물을 나눠주는 시간이 이어졌다. 산타 역할을 맡은 두 명의 남학생이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선물과 즉석 사진을 건넸다. “아까 그 선생님 너무 티 나는 거 아니에요?”라는 아이의 말에 학생들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아이들은 선물 상자를 열어 인형과 간식, 문구류를 확인하며 방방 뛰었고, 떠나는 학생들에게 90도로 인사를 건넸다. 심지어 가지고 있던 사탕을 내밀며 “다음에도 꼭 오실 거죠?”라고 말해 아쉬움을 전했다. 활동을 마친 정서윤 어린이는 “너무 맘에 드는 선물을 받아 행복했고 다음에도 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해피아트지역아동센터 이옥지 센터장은 “재정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이런 정서적 교류가 무엇보다 의미 있다”며 “연말뿐 아니라 자주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골목길에서 열린 작은 기적
시민들에게도 여운 남겨
“지금 들어오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어두운 골목길, 약속된 신호와 함께 대문 뒤에서 산타가 선물 보따리를 메고 등장했다. 놀란 아이들은 애써 덤덤한 척하며 산타를 맞았다. 학생들은 회기동 주민센터와 동대문구 가족센터의 추천을 받아, 열악한 환경에 놓인 여섯 가정을 방문해 아이들이 직접 받고 싶어 한 선물을 전달했다.
첫 선물을 받은 박서아 어린이는 “어? 이건 제가 원하던 레고가 아닌데요”라며 솔직한 반응을 보였고, 학생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두 번째 선물을 열자 “와! 이거 사고 싶었는데!”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학생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기초생활보장수급 가정을 찾아 노약자에게 생필품을 전달했다. 학생들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자, 무표정하던 강봉녀 할머니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동대문구 가족센터 박지희 복지사는 “아이들에게 오래 기억에 남을 특별한 하루가 됐을 것”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 가정을 찾아 노약자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박류빈 기자)
몰래산타 프로젝트 중 따듯함을 전한 뜻밖의 사건 또한 있었다. 이동 중 산타복장에 호기심을 가지던 택시 기사에게 활동 취지를 설명하자, 기사는 “이 일을 하면서 나까지 마음이 따뜻해진 건 처음”이라며 택시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학생들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지만, 기사는 차에서 내려 뛰어와 현금을 건네며 “앞으로도 더 좋은 일 많이 해달라”며 손을 꽉 잡기도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친 학생들은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여운을 곱씹었다. 산타 역할을 맡은 저스틴(경영학 2021) 씨는 “산타 할아버지라는 역할이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큰 추억을 남긴 것 같아 정말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원수 원장은 “선행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저스틴 씨가 산타 분장을 하고 하트아동지역센터 아이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사진=원희재 기자)
모든 일정을 마친 학생들은 산타 복장을 벗고 현장을 정리했다. 골목은 다시 일상의 흐름으로 돌아갔지만, 이날 회기동 곳곳에 오간 인사와 웃음은 연말의 풍경 속에 또 하나의 장면으로 남았다. ‘몰래산타’ 프로젝트는 그렇게 지역의 하루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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