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고 있다. 살기 위해 일하다 죽고 있다. 지난해 10월,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상반신이 끼어 숨졌다. 올해 6월에는 한 노동자가 폭염 속에서 카트를 밀다 숨졌다. 오늘로부터 딱 한 달 전인 지난달 13일에는 택배 노동자가 배달하던 택배 상자를 머리맡에 두고 빌라 복도에서 숨을 거뒀다.
사례를 집어 언급하는 것이 무색하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 재해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숨진 노동자는 2,223명에 달한다. 하루에 6명이 넘는 꼴이다. 하지만 몇몇은 노동자의 죽음이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태도다. A 기업은 노동자가 사망한 이후 선혈이 남은 기계를 천으로 덮고 공장을 계속 가동했다. 또한 빵을 만들다 숨진 노동자 빈소에 위로품으로 빵을 보냈다.
노동자의 죽음을 뒤로하게 되는 이유는 편리와 성장이다. 우리는 이미 노동이 일군 발전에 기대고 있다. 몇천 개가 넘는 식품 계열사 가게가 전부 사라진 길거리, 새벽 배송이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하기 어렵다. 현재 환경 속에서 당장 변화하는 것이 어렵기에 현실 앞에서 타협한다.
그러나 죽음에 빚을 지며 굴러가는 사회는 더 이상 지속되면 안 된다. 임금근로자 10,000명당 발생하는 사고자 수를 집계한 사고 만인율은 현재 0.4가 넘는다. OECD 평균인 0.29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정부는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개편하는 안을 발표했다. 안이 실현된다면 주당 근로시간은 현재보다 최대 17시간 늘어나며 일과 휴식의 균형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고 자연스레 사고율도 높아질 것이다.
현실 앞에서 개인은 고민하고 기업은 변화해야 한다. 가장 선행돼야 할 것은 노동에 대한 인식 개선이다. 그리고 소비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고민해야 한다. 소비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판단을 거쳤는지, 스스로의 판단에 어떤 가치를 담았는지를 돌아보자. 편의점에 일상처럼 진열된 빵이 무엇을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로켓’처럼 빠른 것이 당연한 배송이 무엇을 연료로 삼는지 생각해야 한다.
실적과 편리함보다 사람이 중요한 분위기가 당연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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