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소비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암표 [암표상이 당신을 이용하는 법]
좋아하는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간절히 티켓팅을 합니다. 하지만 표를 구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불안함은 암표의 달콤함에 속아 넘어가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요. 암표상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현장 통제를 뚫고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암표상들은 대체 어떻게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이 기형적인 시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걸까요?
기획 김서연 | twoooosev0612@khu.ac.kr
편집 김서연 / 진행 김다희 / 출연 한정연 기자님 / 구성 VOU
[영상 전문]
티켓팅 실패 직후, 찾아오는 아쉬움.
그렇게 홀린 듯 입장한 암표 거래 채팅방에는 친절한 말투로 정가의 몇 배나 되는 금액이 제시됩니다.
하지만 당장 나한테 표가 없다는 불안감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죠.
공연법 개정 이후 단속이 강화됐지만 암표 거래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교묘해졌습니다.
아이디 옮기기, 대리 티켓팅, 그리고 입장 팔찌 양도까지. 암표는 이제 단순한 재판매를 넘어 하나의 체계적인 서비스가 됐습니다.
법과 시스템을 피해 진화하는 암표 시장. 암표상들은 대체 어떻게 소비자의 마음을 이용해 이 기형적인 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요?
과거에는 현장에서 표를 비싸게 파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본인 인증과 현장의 통제를 교묘하게 뚫어냅니다.
현장 본인 확인이 까다로워지자, 이제는 아예 타인의 신분증이나 명의를 대여해주기까지 합니다.
암표상들은 아이디 옮기기, 이른바 아옮 기술을 자주 활용하는데요. 먼저 자신의 아이디로 자리를 예매해놓고, 예매를 취소한 뒤 곧바로 의뢰인의 계정으로 재예매하는 방법입니다.
타인의 명의로 된 표를 그대로 사면 현장 본인 확인에서 걸릴 확률이 높지만, 아옮을 걸치면 표의 명의 자체가 내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단속의 눈을 속여 본인 확인 절차를 손쉽게 무력화하기 위해 이런 편법을 쓰는 겁니다.
나아가 아예 예매 자체를 대신해 주는 대리 티켓팅 형태도 만연해졌습니다.
대리 티켓팅은 처음부터 의뢰인의 계정으로 예매를 진행하기 때문에 현장 본인 확인을 완벽히 통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암표상 입장에서는 불법 신고를 피하는 강력한 수단이 됩니다.
이미 예매된 표에 프리미엄을 얹어 파는 행위는 불법 암표 거래로 직접 신고당할 위험이 큽니다. 하지만 티켓팅을 대신해 주고 수고비만 받은 형태로 포장하면 신고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죠.
이렇게 암표 시장은 가격을 올리는 수준을 넘어, 현장의 통제 시스템을 무력화하며 점점 더 기형적으로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적 단속과 강화된 시스템 속에서도 왜 암표 거래는 끊이지 않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암표상이 파고드는 소비자의 심리 기제에 주목합니다.
[아이돌 팬]
"티켓팅에 실패해서 플미를 찾는데 아이돌 콘서트에 꼭 함께하고 싶어서 찾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심리는 바로 FOMO, 나만 그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현장 감동을 공유해 진정한 팬이라는 강박이 암표 구매를 자극하는 겁니다.
[한정연 / 경제 칼럼니스트]
"하나의 사치제로써 작용하는 것 같거든요 비싼 암표라는 것이. 사치제는 굉장히 독특한 재화잖아요.
경제학적으로도 수요와 공급 곡선이 있는데 가격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더 수요가 더 올라가고 판매가 더 많이 되는 되게 독특한 제품인데 그만큼 암표라든지 돈을 주고 들어가는 뒷문에 대한 수요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보다는 그분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고 보이거든요."
여기에 자본주의적 조바심이 더해집니다.
밤을 새워 취소표를 기다리는 시간과 감정적 피로를 겪을 바엔 차라리 돈으로 확실한 표를 사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아구 팬]
"취소표를 제 손으로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웃돈을 줘서라도 가고 싶은 의지가 크기 때문에 찾게 되었습니다."
결국 암표상은 팬이 느끼는 피로감과 불안을 돈으로 즉시 해결해 주겠다는 프레임을 씌워 기형적인 거래를 자발적 선택으로 합리화하게 만듭니다.
[한정연 / 경제 칼럼니스트]
"이런 길이 있고 남들도 다 하고, 되게 쿨하게 거래할 수 있어 그렇다면 이것이 큰 문제라고, 본인이 늘 생각했던 형태의 시장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여러가지로 쿨하고 클린하니까 괜찮아 보인다고 본인 스스로를 속이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죠."
암표상들은 이러한 팬들의 불안을 철저히 계산하여 이용합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좌석 고의 폐사입니다. 팔리지 않은 표를 취소 수수료가 커지는 공연 전날 밤까지 쥐고 있다가 그대로 폐기해 버리는 겁니다.
암표를 사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각인시켜, 다음번엔 어쩔 수 없이 암표를 찾게 만드는 일종의 학습 효과를 노리는 전략입니다.
[한정연 / 경제 칼럼니스트]
"일차적으로 암표상의 입장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네들이 공급망을 어렵게 뚫었고 그걸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겠죠. 그것의 효과가 소비자들에게는 '어차피 표를 직접 잡는 것은 안돼'라고 생각해서 미리미리 사는 거라면 (소비자들이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거구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한 이들은 자신의 불법 행위를 전문성으로 포장합니다.
부족한 티켓팅 실력을 매크로와 같은 기술로 보완해 준다는 프레임을 씌워, 자신들을 불법 판매자가 아닌 불안을 해결해 주는 조력자로 위장하고 불법 거래에 대한 죄책감을 희석시킵니다.
[한정연 경제 칼럼니스트 인터뷰]
"쾌적하고 공식화된 듯한 느낌에서 구매를 함으로 인해서 본인의 최잭감도 덜고 암표거래가 당연하다는 듯이 설령 그대로 방치해두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냐라고 얘기하면서 그냥 사게끔 해주는 어떤 마케팅의 일환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결국 암표상은 더 가까이서, 더 좋은 자리에서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순수한 애정을 담보로 잡고, 사랑의 크기만큼 돈을 지불하라고 강요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암표 시장을 유지시켜 온 것은 단속의 빈틈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조바심과 애정을 손에 쥔 암표상들의 계산된 심리전이었던 거죠.
법과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소비자 스스로 수요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암표 불매는 소비하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공연 문화를 지켜내는 관객의 능동적인 권리 행사입니다.
우리가 정당한 소비를 선택할 때, 암표상들이 점령했던 빈자리는 비로소 무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팬들의 함성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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