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또 유출됐습니다 | [개인정보 피로 시대]
처음 개인정보 유출 사고 뉴스에 놀라기도 잠시, 우리는 어느새 유출 피해에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 없이는 플랫폼 서비스의 이용도, 일상생활의 유지도 어려운 오늘. 스팸과 스미싱 등 2차 피해의 위험을 안은 채 당장의 편의에 길들여진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획 나하린 | harin0518@khu.ac.kr
편집 나하린 이여진 최동식 / 진행 김다희 / 출연 고동우 이종우 교수님 / 구성 VOU
[영상전문]
쇼핑, 배달, OTT, 금융까지. 플랫폼 서비스는 이제 현대인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서비스들을 이용하려면 예외 없이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죠. 바로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개인정보 제공이 필수가 된 오늘날이지만 유출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쿠팡이나 티빙 같은 대형 플랫폼부터 SK텔레콤, 우리은행, 그리고 우리가 매일 접속하는 대학교 포털까지.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영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반복되는 유출 사고가 이제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겁니다.
유출 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출이 반복될수록 이용자들의 반응은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내 정보는 이미 다 노출됐을 거라는 체념. 이런 현상을 '프라이버시 피로'라고 하는데요.
개인정보를 관리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는 계속되는데, 정작 이용자는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느끼면서 사태의 심각성에 무뎌지고, 지쳐가는 겁니다.
[고동우 / 한국외대 경영대학 교수]
“무기력도 학습이 된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막상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 작아지다 보니까 결국에는 이 상황 자체에 어떤 피로감도 느끼고요. 심리적으로 ‘프라이버시 피로도‘라고 해서 ’개인(정보)적인 피로도‘라고 이야기 하는데요.
그런 것들이 이제 누적이 되다 보니까 지금의 어떤 반응 자체는 불안감보다는 좀 당연하게 ’그러면 뭐 할 수 없다‘는 복합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 유출 피해 경험자 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용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피로와 무기력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유출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으로, 불안이나 분노보다 '어차피 노출됐을 테니 그러려니 한다'는 체념과 '반복되는 경고에 지친다'는 피로감을 꼽은 응답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느끼면서 통제감을 잃었기 때문에 체념하게 되는 겁니다.
비밀번호 변경과 같은 개인의 노력이 유출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물었을 때도, '효과가 미미하다’는 응답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거대한 플랫폼의 보안 허점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메울 수 없다는 걸 이미 다들 경험으로 알고 있는 거죠.
그럼 이렇게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용자들은 왜 쉽사리 플랫폼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요.
응답자 열 명 중 다섯 명은 '당장 눈에 보이는 치명적인 피해가 없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았습니다. 유출이 발생해도 손해가 즉각 느껴지지 않다 보니 위기감이 흐려지고, 여기에 '타 서비스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겹치면서 위험에 점점 무뎌지는 겁니다.
결국 직접 체감하기 힘든 위험보다 당장의 편의를 우선시하면서, 이용자들은 불안을 안고도 기존 플랫폼을 계속 이용하는 쪽을 택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유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비밀번호 변경이나 2단계 인증을 권고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아무리 비밀번호를 철저히 관리해도, 플랫폼 내부의 데이터베이스나 접근 권한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죠.
정작 침해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는 손댈 수도 없고, 반복적으로 관리를 요구할수록 이용자들은 무력감을 느끼기만 합니다.
[고동우 / 한국외대 경영대학 교수]
“결국에는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제한적이란 말이죠. 결국 시스템적인 문제인 거고, 역사를 뒤돌아 봤을 때도 이런 시스템적인 문제는 결국엔 큰 어떤 엄청난 변화가, 어떤 법적인 제재, 이런 게 발생하지 않는 한 사실 바꾸는 게 되게 어렵긴 한 것 같아요.”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에는 대체로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하지만 이용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조치는 대부분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안내 문자 한 통이 전부죠. 그 사이 개인정보 유출 이후 몰려드는 스팸과 스미싱의 위험 등, 2차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남습니다.
[이종우 /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
“정부가 제재적인 접근은 잘 하는데 과연 지금의 기술력이나 IT 기반의 플랫폼에서 이런 ’해킹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안 능력을 갖고 있나’라는 접근은 안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정보를 이용하고 활용하는 기업들이 보안 수준이 낮아서 그래요.
(보안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기업들한테 가이드를 줘야 하거든요. 이런 것을 연구하고 법제화 해야지 사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거지, (…) 그래서 최근에 제재금을 높여가지고 각 기업들에 대해서 경각심을 주는 분위기는 좋으나 그 기업들한테 보안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개인정보 제공 없이는 서비스 이용도, 일상의 유지도 어렵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예민해져야 할 우리가 반복되는 유출 속에 너무 쉽게 무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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