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교수 시국선언문에 참여한 장문석(국어국문학) 교수, 민유기(사학) 교수
#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지난달 13일 공개된 우리학교 교수·연구자 226인의 시국선언문이 화제다. 시국선언 발표 전반을 주도한 교수는 8명이다. 우리신문은 그중 장문석(국어국문학) 교수와 민유기(사학) 교수를 만나 우리학교의 ‘파격적 시국선언문’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와 현 시국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장문석 국어국문학 교수(왼쪽)과 민유기 사학 교수(오른쪽)를 만나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시국선언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조병연 기자)
문과대학에서 만난 장문석 교수와 민유기 교수는 시국선언문을 기획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민 교수는 “‘교수님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서 시국 선언을 하면 좋겠다’라는 논의들이 있었다”며 “10월 마지막 주에 몇몇 교수님들과 연락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11월 5일, 뜻을 모은 교수 8명이 학교 근처 카페에서 모임을 가졌다. 시국선언문의 방향성, 형식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초안 작성자로 알려진 장 교수는 막막한 마음에 우선 동료 교수들의 의견을 담고자 노력했다. 그는 “시국선언문의 표현이나 내용은 그날 있었던 분들의 말씀을 바탕으로 정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첫 모임이 있고 며칠 후 초안이 완성됐다. 교수들은 초안을 검토하고 일부 문구를 수정해 10일 오후 우리학교 전 교원에게 시국선언 참여 여부를 묻는 메일을 보냈다.
양 캠퍼스에서 200명 넘게 참여
“교육자의 반성, 공감대 형성돼”
학내 교수·연구자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국선언문 발표 전날인 12일 저녁까지 무려 226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당시 한 학교에서 수백 명의 교수가 합동 시국선언을 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를 기획한 교수들이 도리어 놀랐다.
민 교수는 참여자 수를 확인하고 교수들의 심각한 우려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정치, 사회, 경제, 외교, 안보의 모든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자 위기이고, 대통령이 제대로 해결해 나갈 의지조차 없어 시국이 엄중하다는 인식을 전공과 상관없이 갖고 계셨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아가 시국선언문이 말하는 ‘부끄러움’이 교수들의 마음에 가닿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시국선언문의 내용은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민 교수는 “‘이 정도 선언문이라면 나도 시민으로서, 교육자로서 기꺼이 내 이름을 연대 서명할 수 있을 정도다’라고 생각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고 참여자들의 마음을 짐작했다.
교수들이 학생이 작성한 대자보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조병연 기자)
왜 교수가 부끄러워해야 하나?
“기성세대는 계속 반성해야 한다”
장 교수는 반성 없는 습관적 삶 속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사회가 이렇게까지 폐허처럼 돼 있는데, 반성적이지 못한 태도로 살아가고 살아왔었던 상황 자체가 부끄럽다라는 의미를 좀 담았던 것 같다”며 부끄러움의 이유를 설명했다.
시국선언문에서는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이 여실히 드러난다. 선언문 속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는 표현은 날 선 비판보단 용기 있는 고백에 가깝다.
이에 민 교수는 근대 도시 문화의 ‘과부하 현상’을 예로 들며 반성의 형식으로 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도시 문화에서 과부하란 도시의 자극에 의해 감각이 둔감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는 “우리의 시국선언문도 다른 시국선언처럼 대통령 내외의 잘못을 되풀이해서 말하기보다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무너지며 공정의 최저선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듣는다’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표현들이어서 울림이 좀 더 크지 않았나”라고 생각을 전했다.
강의 결석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 순간
“부조리 마주하는 학생들 안쓰러워”
장 교수는 2022년 이태원 참사 직후를 회상했다. 대학에서 수업의 결석이나 지각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참사 다음날 그는 “출석을 부르고 답이 없자 어쩔 줄을 몰랐다”며 “수업이 끝나고 다른 교수님들에게도 물어보고 행정실에도 물어봤는데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거에요. 그날은 학교 전체가 멈춰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민유기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언급하며 군에서 명령 체계를 따를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걱정했다. 그는 “군대를 가게 될 학생들도 앞으로 어떤 부조리한 명령 체계에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될 것이 안쓰러운 것이죠”라며 염려를 전했다.
계엄 해제 이후 정국 속에
“교수의 역할 적극 취할 것”
장 교수와 민 교수를 만난 날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직후인 지난 4일이었다. 교수들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시국 속에서 지난 선언이 추후 행동으로 이어질 것임을 밝혔다.
민 교수는 “앞으로 역사를 움직이는 다수 국민들의 참여가 있을 것이다”며 “그 과정에서 교수로서 역할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들을 다들 가지고 계신 것 같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4일 오후 학내 게시판은 윤 대통령을 규탄하는 학생들의 대자보로 뒤덮였다. 장 교수는 대자보를 바라보며 “학생들과 같이 뭔가를 할 수 있으면 또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학생들과 현 시국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더불어 “학생들과 시국선언문을 보고 수업 시간이건, 혹은 강의실 밖이건 인간다움과 사회 문제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며 “학생뿐만 아니라 글을 읽는 모든 독자분들과 일반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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